예경도서분류

(494)
  • 중국의 색
    중국의 색
    중국 전통색 세계를 통해 중국인의 정신과 문화, 역사를 살펴본 책
    저자
    황런다
    역자
    조성웅
    정가 35,000원
    판매가 33,250원 (5% 할인, 적립금 1,750p)

    대륙을 미혹한 색의 세계를 통해  중국의 정통성을 읽다 이 책은 색으로 피어난 중국인의 정신과 중국 문화의 풍미를 찬찬히 차를 음미하듯이 깊은 역사적 울림으로 고즈넉하게 전달한다. 색채를 중시한 중국 민족은 긴 세월 동안 정치, 경제, 사회풍조는 물론이거니와 복식, 건축, 회화, 서예, 공예를 비롯해 음식과 한의학, 집안 장식 등에 이르기까지 생활 곳곳에서 색채와 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러한 중국의 전통색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으며, 색이 포용하는 영역도 넓고 세밀하다. 게다가 사마천의 《사기》, 나관중의 《삼국연의》, 허신의 《설문해자》, 조설근의 《홍루몽》, 이어 《시경》, 《한비자》, 《수호전》, 《손자병법》,《제민요술》 등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중국의 문헌 속에는 9가지 색계에 포함된 100가지의 색들에 대한 내용이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 찬란하고 고운 색으로 물든 중국의 면면에 즙처럼 흐르는 중국인의 심미관이 왜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고 또 곱씹어볼 만하다. 독자들은 중국의 문화 곳곳에 깃든 색의 향연을 통해 거대한 대국의 유구한 역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관통하게 된다.9대 색계, 100가지 색, 200여 장의 도판문화, 역사, 여행, 촬영, 디자인을 좋아하는 생활 미학가들에게 권함홍색: 중국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바탕색, 상서로움, 기쁨, 결혼과 떠들썩함을 상징한다.현황: 반고가 처음 세상을 연 뒤로 고대 중국인들이 맨 처음 인지한 원시의 색으로       엄숙함, 융성함, 긍정적인 함의를 대표한다.남색: 중국 서민 계급의 색.녹색: 대자연에 제멋대로이지만 조화롭게 섞인 녹색으로 가득하다.       한족 색의 역사에서 연한 색에 속한다.자색: 황제가 전용하던 색이자 도교에서 숭상하던 색이다.중국의 색은 전부 생활 속에 있다. 대자연의 색 색은 대자연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해가 뜨고 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자연 풍경 속에서 적(赤), 청(靑), 황(黃), 백(白), 흑(黑) 등 우주 대지를 만든 다섯 가지 기본 색조 관념을 얻었고, 그로부터 ‘오색관(五色觀)’이라는 색채 이론을 지어냈다. ‘오색(五色)’과 관련된 개념이 가장 일찍 기록된 문헌은 순(舜) 임금, 우(禹) 임금과 고요(皐陶)의 대화가 담긴 《상서(尙書)》 <익직(益稷)> 편이다. 또한 고대인들은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본요소)의 오행법칙에 근거하여 동(東), 서(西), 남(南), 북(北), 중(中)의 다섯 방위를 정하고 색과 연관시켰다. 그리고 권세와 지위, 철학과 윤리, 예의와 종교 등 다양한 관념을 색에 섞어 넣으면서 점차 독특한 풍격의 색채 문화 시스템을 완성하였고 결과적으로 중국 전통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의 전통색 문화는 역대의 정치·경제, 사회 풍조, 문학·예술, 민속 절기 및 사상 관념과 심미 기준이 반영된 것으로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다채롭고 풍부하기 그지없으며 응용 범위 또한 무척 넓다. 긴 세월 동안 복식, 건축, 회화, 서예, 옥기(玉器), 자기(瓷器), 공예, 집안 장식에서 일상 음식 및 한의학 등에 이르기까지 전통 문화 각 분야에서 고르게 색채와 관계를 맺어온 것만 보아도 중국 민족이 색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색채 문화의 시작 중국은 기원전 약 11세기부터 색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색채를 ‘정색(正色)’과 ‘간색(間色)’ 두 종류로 나누었다. 이중에 정색은 앞에서 언급한 오색이고, 간색은 다른 ‘정색’이 각각의 비율로 섞여 이루어진 부수적인 색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색(閒色)’으로 부르기도 한다. 춘추 시대에 쓰인 《손자병법(孫子兵法)》 <세(勢)> 편에 보면 “색은 변화가 셀 수 없이 많으나 ‘오색’을 벗어나지 않는다(色不過五, 五色之變, 不可勝觀也).”라고 하였다. 이 ‘정색’과 ‘간색’에 대한 설명은 현대 광학(光學)에서 일컫는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삼원색(三原色)’ 이론과 인쇄술에서 사용되는 남색(Cyan), 자홍색(Magenta), 노란색(Yellow), 검은색(Black) 네 가지 색 원리와도 비슷하다. 즉 고대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색을 구성하는 패턴을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과학 실험의 기초가 부족했을 뿐이다.중국의 전통색은 다양하기가 이를 데 없으며 색이 포용하는 영역도 넓고 세밀하다. 게다가 갖가지 색은 각기 다른 사상과 의미를 전달한다. 이 책은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색채의 세계에서 백 가지 색을 선별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유행했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현대 중국인 일상에서 활용되는 중요한 갖가지 색의 근원과 출처, 사용해온 역사와 특징 및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지니는 함의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색채학 이론에서 전문으로 쓰이는 네 가지 전문용어, 즉 색상, 명도, 채도 및 색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각종 색의 혼합 비율을 독자가 바로 구별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표시했다. 독자들은 중국의 색채 지식을 이해하면서 동양 전통색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찰하는 100가지 색채미학 반고가 처음 세상을 만든 뒤로 고대인은 색을 인지하고 선택해서 사용하였다. 이러한 인지와 선택은 사람의 원시적 본능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실용적 필요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동서양의 각 민족은 시간이 흐르면서 색을 인식하는 능력이 발전했고, 문화 배경과 지역 환경의 차이로 점차 개성 있는 색채 문화와 관념을 발전시켰으며, 여러 색이 가진 상징과 함의 또한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다. 예컨대 서양에서 백색은 이상적인 천국의 색이고, 고대 중국에서 흑색은 가장 높은 지위를 의미하는 색으로 숭배됨과 동시에 죽음을 대표하는 색이었다. 아랍의 색채 문화에서 갈색은 생명의 종결을 뜻하는 색이다. 중동 유목 민족은 대자연의 풍경에서 가을 잎이 떨어진 후 바싹 마른 색을 보고 퇴락하여 죽음에 이르는 색을 갈색으로 보았기 때문이다.중국 상고 시대의 ‘음양오행’ 학설과 ‘오정색’ 관(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은 동양 색채에서 안정되고 일관된 색채 구조와 이념을 세웠다. 중국의 다양한 전통색이 포괄하는 영역은 넓고도 섬세하다. 그리고 이 여러 색은 각각 다른 사상과 의미를 전달한다. 오늘날에 와서 중국, 타이완, 홍콩 및 해외 화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중국의 조상들이 만든 오정색은 실제 생활에 응용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져서 여전히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아름다운 옛 색에 담긴 의미와 사상은 여전히 변치 않고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사람을 매혹하는 중국 전통색의 세계에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활용된 100가지 중요한 색을 고르고 각종 색이 비롯된 출처, 사용해 온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분야에서의 함의를 쉽게 소개하고 체계를 잡아 읽어 냈다. 모쪼록 독자들이 중국의 색채 문화를 잘 이해하고 동양 전통색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 바느질 없이 만드는 손뜨개 니트
    바느질 없이 만드는 손뜨개 니트
    쉽고 간단하게, 바느질 없이 단 한 번에 니트 만들기 
    저자
    크리스틴 텐다이크
    역자
    정지인
    정가 19,000원
    판매가 18,050원 (5% 할인, 적립금 950p)

    ××××××××××××××××××××××××××××××××××××××××××××××××××××쉽고 간단하게, 바느질 없이 단 한 번에  니트 만들기 ××××××××××××××××××××××××××××××××××××××××××××××××××××바느질하느라 진땀 빼지마세요!뜨는 동안 저절로 솔기가 이어지는 20가지 패턴이 여기 있으니까요.바늘을 들고 솔기를 꿰매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멋진 스웨터를 뜰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니트웨어 디자이너 크리스틴 텐다이크가 그 꿈같은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 책에 실린 스무 가지 디자인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바느질하지 않고도 니트웨어를 완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해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틴 텐다이크는 바느질이 필요 없는 뜨개 기법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단순한 기술만 익혀둔다면 이 책에 실린 디자인들처럼 머릿속에 구상한 형태를 한 번에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바느질로 꿰매야만 하던 진동과 소매마루 연결부도 사선 되돌아뜨기로 한꺼번에 뜨면서 모양을 살려 연결할 수 있습니다. 주머니와 단추 앞단 등 디자인 요소까지도요.일단 이렇게 쉬운 기법을 터득하고 나면 이 책에 담긴 디자인들뿐 아니라 다른 디자인에도 각 방법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뜨개질을 할 때 ‘약간의 솔기 바느질이 필요하다’는 말은 가뿐히 지워버리세요. 바느질 없이 만드는 손뜨개 니트가 이제 시작됩니다. ■ 이 책의 특징 1. 본문에 사이즈별로 표시해서 다양한 체형에 고루 잘 맞게 구성 2. 일상적으로 자주 입는 편안하고 캐주얼한 디자인의 옷들로 구성3.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누구나 만들어볼 수 있도록    단순한 패턴부터 난이도가 있는 패턴까지 골고루 구성 4. 모든 디자인이 솔기 없이 완성되므로 따로 바느질을 할 필요가 없음  전체 구조와 형태가 뜨는 도중에 완성되어   마지막 단에서 코막음만 하면 모든 과정이 끝남 5. 이 책에 실린 옷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는 책 안에    팁이나 뜨개 가이드나 용어설명에 실려 있음 

  • 미술과 성서
    미술과 성서
    성서 텍스트로 읽는 서양미술 2000년의 역사
    저자
    정은진
    정가 24,000원
    판매가 22,800원 (5% 할인, 적립금 1,200p)

    “성서 텍스트로 읽는 서양미술 2000년의 역사” 네이버캐스트 인기 칼럼 ‘명화 속 성서이야기’가 책으로 탄생하다!천지창조부터 최후의 심판까지 총 500여 점의 올컬러 작품 수록 네이버캐스트의 칼럼 ‘명화 속 성서이야기’가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보완하여 새롭게 책으로 출간되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제1장 ‘천지창조’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다양한 성서 속 사건들과 인물들을 넘나들며 신약성서의 맨 마지막 부분, ‘최후의 심판’까지 이어진다. 서양미술사학자인 저자는 직접 수집한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회화뿐 아니라 조각, 무덤 벽화, 필사본, 청동문, 장식물 등 서양미술 속 다채로운 작품들을 흥미로운 성서이야기와 함께 풀어놓는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에피소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둘 골라 읽다보면, 어느새 기원전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기 1장 31절)나는 이 한 문장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에 대해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그분은 예술가처럼 작품을 만들고, 또 우리처럼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 책은 문자로 이루어진 ‘성서’가 어떻게 ‘미술’로 표현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머리말 중에서성서의 ‘코드’를 통해 읽는 흥미로운 서양미술사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성서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한 다음, 이 주제를 표현한 다양한 서양미술 작품들을 찾아 독자에게 한꺼번에 보여준다는 점이다. 기존에도 서양미술 속 그리스도교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흥미롭게 비교하며 제시하고 설명한 책은 없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천지창조’ ‘모세의 기적’ ‘예수의 탄생’ ‘최후의 심판’ 등 같은 주제를 다룬 서양미술 속 다양한 작품들을 한눈에 파악하고 감상할 수 있으며, 나아가 보다 입체적으로 미술작품의 맥락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그리스도교 코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루벤스 등 서양미술사의 수많은 거장들이 교황과 성직자, 그리고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종교화를 그리는 데 아낌없는 열정을 쏟았다. 이 책에서는 유명하고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 주로 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던 이름 없는 예술가들와 개성 있는 당시의 지역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모았다. 책에 실린 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같은 주제를 어떻게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지를 비교해가며 읽다보면, 어느새 서양미술을 감상하는 색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500여 점의 도판, 장르를 넘나드는 풍부한 도상학적 자료집이 책에는 구약과 신약 성서를 아우르는 500여 점의 작품이 전면 올컬러로 실려 있다. 저자는 각 에피소드마다 시대별・작가별로 가능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모아 독자들이 성서의 내용을 도상학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감상하도록 했다. 여기에 미술사학자인 저자의 깊이 있고 명쾌한 설명이 독자들로 하여금 각 작품의 차이와 의미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따라서 이 책은 그리스도교를 다룬 서양미술 작품의 아카이브로서의 역할에 매우 충실하다. 특히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다루어온 기존의 서양미술책과 비교해볼 때 이 책에서는 15세기 이전의 서양미술을 보다 다양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고대의 무덤 벽화, 중세의 필사본 삽화, 르네상스 시대 청동문, 다양한 시대의 건축, 조각품, 장식물 등 그리스도교를 표현한 다양한 소재의 이미지들을 기존에 익숙한 회화 작품과 함께 제시했다. 인기의 네이버캐스트 칼럼, 책으로 탄생하다이 책은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서양미술 칼럼 ‘명화 속 성서이야기’를 기본으로 그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발전시키고, 또 깊이 있게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네이버 연재 당시 독자들로부터 받았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보다 충실하게 서양미술의 이해와 감상에 필요한 내용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 책은 미술사학과 그리스도교 도상학을 기본으로 각 작품들을 설명해가고 있지만 결코 난해하거나 읽기에 어렵지 않다. 아마도 지난 2년 여간 인터넷의 독자들과 소통하며 글을 이어온 까닭일 것이다.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칼럼과 마찬가지로 책은 여전히 흥미롭게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구성이지만, 각 미술작품마다 보다 세세한 설명과 색인, 참고 자료를 더하여 독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지 편리하게 읽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 서양미술사(문고판)
    서양미술사(문고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작고, 가볍게 만나다!
    저자
    E.H.곰브리치
    역자
    백승길, 이종숭
    정가 25,000원
    판매가 23,750원 (5% 할인, 적립금 1,250p)

    지금까지 출판된 미술에 관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책,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명저《서양미술사》가 문고판(Pocket Edition)으로 출간되었다. 1950년 영국에서 초판이 간행된 이래 전 세계에서 서양미술사 개론의 필독서로 입지를 굳힌 이 책은 초판 간행 이후 제16차 개정증보판으로 거듭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만 35년이 넘는 긴 출판역사를 거쳐 왔다.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는 데 힘입어, 원출판사인 파이돈 출판사에서는 더 많은 독자들이 일상에서 쉽게 서양미술사를 접할 수 있도록 문고판을 기획했다. 서가용으로만 한정되던 기존 판형의 단점을 개선해, 태블릿 PC처럼 이동 중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손에 잡히는 크기로 구성했으며, 얇고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 책을 지니고 다닐 때의 부담감을 덜었다. 선사 시대의 동굴 벽화로부터 오늘날의 실험적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를 다룬 이 책은 곰브리치만의 유려한 필치로 기술되어 마치 소설처럼 읽어가며 미술사의 진면목에 빠져들게 된다는 매력이 있다. 1900년대 초, 빈에서 태어난 작가의 글을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열광하며 읽는다는 것은 경이로운 한편, 이 책을 넘어서는 또 다른 미술사 책이 출간되지 못했다는 것은 곰브리치의 저력을 새삼 실감케 하는 근거가 된다.출간 이후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의 시작 미술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가 미술이라고 부르는 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내재된 의미가 변천되어 왔다고 곰브리치는 말한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색깔 있는 흙으로 들소의 형태를 그리는 그런 사람들이 미술가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물감을 사서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그리는 사람들도 미술가들이다. 우리들이 미술이라 부르는 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고유 명사의 미술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한, 이러한 모든 행위를 미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미술이라 부르는 활동이나 작품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랐다. 미술 대학을 나와 화실을 열고 창작에 몰두하다가 몇 차례 개인 전시회도 열고 상도 받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화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걷는 미술가로서의 길이다. 그러나 아득한 옛날의 미술가들은 사냥감이 좀더 많아지고 사냥에서 성공을 거두어 굶주리지 않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동굴 벽에 사냥감에 모습을 그려 넣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결국 우리가 미술과 미술가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관념은 어디까지나 오늘날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지나간 시대의 미술 및 미술가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술 및 미술가를 역사적으로, 곧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곰브리치가 선사 시대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나긴 미술의 역사를 이야기하려 한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 어떻게 볼 것인가사실 관객에게 중요한 건 미술의 개념이나 범주보다는, 지금 내 눈앞에 놓여 있는 바로 저 그림 혹은 저 조각상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이다. 시대별로 두드러진 수많은 양식이 적용된 각각의 작품들에 대한 관람객들의 호불호는 늘 일정하지 않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 작품의 좋고 그름을 선정하다. 등산을 싫어하기 때문에 산 그림을 보고 본능적으로 등을 돌리거나, 어떤 초상화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등 개인이 삶에서 축적한 경험에 따라 작품에 대한 선호도는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현실 생활에서 보고자 하는 것을 그림 속에서도 보기를 원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를 원하는 것, 대체로 아름답다고 규정짓는 것들에서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냐에 관한 취향과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고생에 찌들린 늙은 어머니를 진실되게 그린 뒤러의 습작은 보는 이에 따라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작품의 가치를 측정할 수는 없다. 미술에 대한 취향은 분명히 음식과 술에 대한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그것은 여러 가지 미묘한 맛을 발견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훨씬 진지하고 중요한 일이다. 위대한 거장들은 미술 작품에 그들의 모든 것을 바쳤고, 작품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심혈을 기울였으므로, 그들은 우리에게 최소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술 작품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안다는 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왜 미술가들이 그처럼 독특한 방법으로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은 왜 특정한 효과를 노리는가 하는 점들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미술품이든 그 작품 속에는 무수히 많은 역사적, 문화적, 심지어 과학 기술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작품을 남긴 작가의 삶이라는 배경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국 하나의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일은 그러한 배경들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대상을 앞에 놓고서도 그 대상의 배경에 대해 좀더 많이,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그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곰브리치의 저작이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미술 작품을 보는 우리의 눈을 날카롭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키워줄 것이다. 곰브리치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밝힌 것처럼 그는 설익은 지식과 속물근성으로 미술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미술에 대한 눈을 뜨기를 원하는 것이지, 입을 헤프게 놀리는 일을 돕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 책의 집필 배경에 대해 분명하게 밝힌 바가 있다.여전히 생명력을 지닌 곰브리치만의 필력“책은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을 한 로마의 시인은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그의 말을 손으로 베끼고 또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말이 곳곳에서 쓰여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곰브리치 역시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이 책의 미래에 대해 꿈꾸어본 적이 없었다. 곰브리치는 아직 낯설지만 매혹적으로 보이는 미술이라는 분야에 처음 입문한 사람들, 특히 자신들의 힘으로 이제 막 미술 세계를 발견한 10대의 젊은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집필했다고 서문에 밝힌 바가 있다. 미술이라는 넓은 분야의 지세(地勢)를 보여주고, 까다롭고 복잡한 인명과 각 시대와 양식들을 알기 쉽게 정리함으로써, 보다 더 전문적인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곰브리치는 미술책은 으레 어려울 것이라는 고정된 인식을 줘 이쪽 분야를 등한시하게 만드는 현학적인 용어나 얄팍한 감상의 나열을 최대한 피하는 것을 우선으로 본서의 방향을 잡았다. 지나치게 평범하고 비전문적으로 보일지 모르는 위험 부담을 안고서도 평이한 말을 사용하려고 성심껏 노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도판으로 보여줄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피했으며, 인명 나열로 얼룩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리고 작가와 작품의 선택 범위는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한정지었고, 유명한 걸작들이 저자의 개인적인 기호 때문에 제외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자제를 했다. 왜냐하면 분명히 진부한 작품들의 낯익은 모습이 오히려 고마운 이정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평범한 말로 미술의 역사를 다시 한번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미술 감상을 돕고자 하는 데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그렇기에 그 자체로서 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 출간 이후 60년이 지나서 문고판으로 재탄생한 최고의 미술 입문서이 문고판 《서양미술사》는 2001년 저자가 작고한 이후 최초로 새롭게 간행된 판이다. 35개 언어로 번역되어 미술 입문서로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며 가장 잘 팔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초월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최고의 미술 입문서로 남아 있는 이 책은 전 세계의 수많은 학생, 미술 애호가와 전문가들에게 최초의 기착지가 되어주고 있다. 이 책은 한눈에 휴대성과 편리함이 느껴지도록 하기 위한 파이돈 출판사 발행인의 고민이 깃든 결과물로, 최대한 휴대성을 확보하기 위해 텍스트 부분에는 경량지를 사용했으며, 이미지는 뒷부분에 분리해서 실었다. 책끈을 여분으로 하나 더 넣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이미지를 함께 펼쳐보는 데 무리가 없도록 구성된 이 책은 기존 16판과 텍스트와 이미지 모두 동일하게 실려 있다. 단, 매 장 끝에 저자가 수록했던 (하지만 본문과 직접 연관되진 않는) 작은 삽화는 문고판의 레이아웃에서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으로 빠지게 되었다. 디자인과 레이아웃의 각 요소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곰브리치가 이 문고판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나, 더 많은 이들이 서양미술사를 쉽게 접할 수 있기를 바라던 곰브리치의 뜻은 현재의 전 세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으로 생각된다.곰브리치는 현학적인 표현을 삼가고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참신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단지 몇 마디만으로 한 시대의 전체 분위기를 조명할 수도 있다. _《더 타임스》읽고 또다시 읽을 책이다. _ J. 카터 브라운, 전 워싱턴 국립 미술관장이자 미국 미술원장  이 책은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다._ 제레미 아이작스, 런던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하우스 전 총괄 디렉터 아직까지도 이 책이 기드온 성경과 함께 호텔 침대 옆 탁자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놀라울 뿐이다.곰브리치의 글은 신의 목소리만큼 힘차고 권위가 있으니……._《버밍엄 포스트》영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미술서,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으며 꾸준히 수요가 있는, ‘선물하기 좋은 책’ 중에서도 드물게 실제로 사람들이 읽는 책. 미술이라는 주제는 곰브리치의 손에서 바야흐로 천의무봉을 이루었다. _《더 타임스》, <1945년 이후의 가장 중요한 책 100권> 

  • 레이스 꽃 100 송이
    레이스 꽃 100 송이
    레이스 손뜨개로 알록달록 다양한 꽃을 만들어 보세요
    저자
    케이틀린새니오
    역자
    조진경
    정가 18,000원
    판매가 17,100원 (5% 할인, 적립금 900p)

    소품에 멋을 더하는 레이스 꽃 아이템 100가지가 실려 있어요!코바늘 손뜨개를 처음 시작하세요?화단의 자연을 손뜨개 소품으로 옮기고 싶으세요?부드럽고 섬세한 레이스 꽃을 만들고 싶으세요? 코바늘 레이스로 다양한 꽃과 식물을 만들어 보세요. 코바늘로 뜬 손뜨개 모양은 자연의 형태와 아주 흡사하지요! 코바늘을 이리저리 몇 번 움직이다보면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인 나뭇잎, 겹겹의 꽃송이, 부드러운 곡선의 나비를 눈 깜짝할 새에 만들어낼 수 있답니다!《손뜨개 꽃 100송이》에 이어 레이스로 만드는《레이스 꽃 100송이》를 소개합니다. 기본적인 코바늘 뜨개법만 익히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다양한 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먼저 책 앞부분에 소개된 ‘완성 작품들 보기’를 살펴보세요. 소박한 데이지나 귀여운 복숭아꽃, 화려한 수국과 단아한 붓꽃까지 사계절의 화사한 꽃밭을 손뜨개로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따스한 봄날의 화단 또는 정다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계절별 꽃도 함께 모아서 실었습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들어 저절로 뜨고 싶어지는 여러 가지 꽃들을 직접 골라보세요.   ‘실전 뜨기’에서는 꽃마다 다른 패턴과 실, 사용하는 바늘을 자세하게 소개하여 뜨개질 방법을 쉽게 설명했습니다. 초급・중급・고급을 나누어 표시하여 누구나 쉽게 레이스 꽃송이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응용하기’에서는 레이스로 뜬 꽃을 소품이나 장식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계절의 분위기를 물씬 살리는 테이블 매트, 쿠션 커버에 여러 가지 레이스 꽃을 달아 손쉽게 집안을 장식해보세요. 가을에는 국화를, 겨울에는 호랑가시나무를, 봄에는 분홍빛 복숭아꽃을, 그리고 여름에는 푸른 수국을 여러 가지 소품과 옷, 가방에 달아보면 어떨까요. 밋밋한 벽에는 작은 꽃송이를 실로 엮어 만든 꽃줄을 걸어보세요. 방안 가득 부드럽고 화사한 느낌이 한껏 살아납니다. 여기에 조명이나 샹들리에의 불빛을 더하면 더욱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요. 아장아장 아기의 신발이나 손뜨개로 만든 어린이 옷, 봄날의 티타임에 어울리는 티 코지나 티 소품에도 레이스 꽃을 활용해 장식해 보세요.책에 실린 도안을 보고, 자투리 실이나 색색의 다른 색의 실을 사용해 사시사철 다양한 꽃송이를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섬세하고 귀여운 레이스 꽃송이는 겨울 뿐 아니라 봄과 여름의 소품에도 멋지게 어울립니다.《레이스 꽃 100송이》로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나만의 정원을 만드세요. 이런 점이 좋아요100송이의 다양한 레이스 꽃을 소개했습니다. 자연의 화단을 그대로 책으로 옮긴 듯한 다양한 종류의 레이스 꽃을 색상별, 계절별로 알아보기 쉽게 소개했습니다.하나의 꽃마다 각각 다른 도안을 보기 좋게 실었습니다.각각의 꽃을 만드는 도안을 알아보기 쉽게 큼직하게 싣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레이스 꽃을 활용한 다양한 장식 사례를 소개했습니다.누구나 레이스 꽃을 활용해 집안과 주변을 손쉽게 꾸밀 수 있도록,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과 장식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 폰트의 비밀
    폰트의 비밀
    세계적인 폰트 전문가가 안내하는 흥미진진한 폰트의 세계
    저자
    고바야시 아키라
    역자
    이후린
    정가 18,000원
    판매가 17,100원 (5% 할인, 적립금 900p)

    폰트의 역할을 명확하게 설명하기에 딱 알맞은, 이 책의 부제가 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명품 브랜드의 로고는 왜 유독 고급스러워 보일까?” 고급 브랜드에서 쓰는 폰트는 뭔가 특별한 것일까? 하지만 알고 보면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고 있는 서체는 의외로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폰트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품격 있는 로고의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폰트의 비밀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의 로고와 그 로고에 쓰인 폰트에 숨겨진 비밀을 털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에 독일에 거주하는 폰트 디자이너인 저자가 유럽 곳곳을 다니며 모은 로마자 폰트의 다양한 참고 사진과 실제 사용되는 서체 견본을 함께 정리하여, 영문 폰트의 활용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폰트를 고르는 안목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서체 디자인의 기본 원리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명쾌하게 풀이하여 전문성을 더했다. “폰트의 세계란 영화나 음악, 요리, 와인처럼 입문하기에 매우 쉽고 간단합니다. 그렇기에 좀 더 일상생활 안에서 화젯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브랜드의 로고는 왜 고급스러워 보일까? 품격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폰트의 비밀은?명품 브랜드의 로고는 어째서 고급스러워 보일까? 로고에 쓰인 폰트는 어딘가 특별한 것일까? 하지만 의외로 명품 브랜드에 쓰인 서체는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폰트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루이 비통의 로고에 쓰인 폰트 ‘푸투라Futura’는 누구나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평범한 폰트이다. 그런데 막상 단어를 써 보면 어딘가 느낌이 다른데, 로고의 고급스러움을 만드는 데는 폰트 자체 외에도 글자 사이의 간격, 굵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저자는 이러한 ‘고품격’ 폰트들이 현대에 와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마이클 잭슨의 앨범 재킷이나 고급 초콜릿 고디바의 로고에 쓰인 폰트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인 판테온과 티투스 개선문, 포로 로마노의 비문에 쓰인 전형적인 고대 로마의 대문자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 2000년 전에 완성된 황금비율과 레이아웃을 디지털 폰트에 잘 적용하고 응용하여, 현대의 다양한 로고나 인쇄물에서 고급스러운 품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브랜드의 가치를 로고로 형상화하여 고객에게 무의식적으로 전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재 많은 명품브랜드에서 고전적인 폰트를 활용하는 이유다. 로코코시대 이후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동판인쇄 계열의 스크립트체는 21세기인 지금도 와인 라벨이나 격식 있는 호텔, 고급 레스토랑 등 전통적이고 섬세한 미의식이 느껴지는 곳에서 사용된다. 이러한 브랜드들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고대의 영문 서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활용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유럽의 거리를 거닐며 발견하는 로마자 폰트의 세계명품 로고에서부터 시작한 흥미로운 폰트 이야기는 저자가 유럽의 거리에서 직접 촬영한 80여 점의 다채로운 폰트 이미지들로 연결된다. 저자 고바야시 아키라는 대학 졸업 후 일본의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다 영문 서체를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1989년에 무작정 런던으로 떠났다. “일본인인데 로마자 서체의 디자인을 알 리가 없다.”며 주변의 만류도 심했던 시절이었다. 끊임없는 노력 끝에 이후 세계적인 서체 공모전에서 두 번의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현재 독일의 모노타입Monotype사에서 동양인 최초의 타입디렉터Type Director로서 서체 디자인의 총괄 지휘를 맡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이따금 고국에 돌아와 강연을 해보면, 아직도 영문 서체에 대해 좁은 시각과 견해를 가진 디자이너들이 많았다.“일본에서 폰트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글자를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미의 디자이너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외국의 좋은 예를 자주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아침부터 밤까지 로마자 폰트의 세계에 있는 제가 일상생활과 일터에서 인상에 남는 풍경을 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저자가 보여주는 사진 속 유럽의 거리를 산책하듯 따라가다 보면, 다채로운 영문 폰트의 활용법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저자는 파리, 로마, 독일, 스위스, 영국을 다니며 다양한 폰트 샘플을 사진으로 찍어 모았다. 루브르박물관에 갔다가 뮤지업숍에서 자신이 작업한 서체를 발견하기도 하고, 파리의 카페 간판에서, 기차역에서 우연히 읽은 신문에서, 여행 중 가게에서 사먹은 초콜릿과 과자의 패키지에서도 흥미로운 사례들을 발견한다. 폰트를 고르는 ‘안목’을 키우는 타이포그래피 기본 상식그렇다면 실제로 폰트를 잘 고르는 데 어떤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이 필요한 것일까?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먼저 여러분들이 알아두었으면 하는 것은, 폰트에 어려운 규칙이란 없으며 폰트는 외형으로 고르면 OK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식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기본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식을 옷에 비유하면 가장 알기 쉬울 것 같습니다. 격식 있는 장소에서 입는 옷과 평상복, 등산이나 해수욕장에서 입는 옷의 차이 정도랄까요. 특별히 옷에 관한 두꺼운 역사책을 공부하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이와 더불어 ‘어디든지 어울리는 만능 폰트’란 과연 있는지, 디지털 폰트가 나오기 전 영국 인쇄소에서 썼던 활자시대의 서체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언뜻 비슷해 보이는 몇 가지 서체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비교를 통해 디자인 작업이나 일상 속에서, 우리가 보다 적절하게 폰트를 고를 수 있는 방법과 팁을 명쾌하게 알려준다.여기에 프로 디자이너 혹은 폰트를 보는 ‘눈’을 키우고 싶은 독자들이 알고 있으면 좋을 타이포그래피 기본 상식을 더했다. “알파벳 A는 왜 오른쪽 선이 더 굵을까?”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만든 ‘공항용 서체’는 일반적인 폰트와 어떤 점이 다를까?” 등 폰트와 관련해 꼭 짚고 넘어가야할 흥미로운 타이포그래피 기본 상식을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예시를 들어 전문가의 시각에서 명쾌하게 설명했다. 나아가 프로를 지향하는 폰트 디자이너라면 꼭 알아야할 ‘이음자 만들기’, ‘인용부호 활용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물론, 동양인이자 세계적인 로마자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하며 느낀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 바이블 아틀라스
    바이블 아틀라스
    지도로 보는 성경, 바이블 아틀라스 
    저자
    배리 밴드스트라 외
    역자
    서경의
    정가 38,000원
    판매가 36,100원 (5% 할인, 적립금 1,900p)

    역사 · 문화 · 사회 · 지리적 맥락에서 성경을 다시 읽는 이 책은 그간 성경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난해함을 극복하고 평이한 문장으로 새로운 성경 독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가장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과 연구, 그리고 학술자료 들을 근거로 성경의 거대한 서사와 지리적 특색을 현대의 지도에 표기해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소개한다. 신선한 통찰력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거시적인 안목을 제시하는 이 책은 성경에서 언급되는 125점의 지도와 그 외 수 점의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 등으로 시각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게다가 성경 용어의 해설과 성경 지명의 분류, 광범위한 참고 문헌 등의 자료까지 싣고 있어 성경의 모든 것을 다룬 가장 완벽한 개설서이자 성경 대신 읽어도 손색이 없는 성경의 또 다른 완역본이라 할 수 있다.성경 속 장소와 사건과 인물을 한 권으로 담아낸 최고의 바이블 가이드 □ 125점의 지도와 수십 장의 도판으로 시각적인 완성도를 높인 완벽한 지리역사서 □ 구약부터 신약까지 핵심적인 인물들과 사건으로 리라이팅한 현대판 바이블 □ 총 27명의 연구진들이 가장 최근의 자료로 복원해 낸 성경 속 도시와 기후인류가 기록한 최고의 서사, 성경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후 150년까지 이르는 동안, 수많은 저자로부터 집필된 성경은 그 내용과 형식이 각기 다른 66권의 문서가 묶여진 거대한 서사물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에서 언급되는 지역과 인물, 사건 들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흐름을 눈으로 쫓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 세계에 분포된 수만 명의 기독교인 중 여느 도서도 압도할 만한 성경의 엄청난 스케일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따름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읽기 쉬운 개역개정판 성경이 출간되지만, 빼곡한 텍스트만으로 구성된 성경을 인내심을 갖고 읽기란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끊임없는 종교 갈등으로 이어진 전쟁과 역사의 면면에 숨겨진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려면 세계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멸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문자가 생겨난 이래 최고의 서사로 불리는 성경.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성경을 쉽게 읽는 완벽한 지리역사서 타 문화와 그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문화가 자리 잡은 환경적 배경부터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성경에서는 그 시대의 사람과 장소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 성경을 가장 처음 접한 독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지리·문화적 관습·역사적 사건 등에 익숙했지만, 현대의 독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시대의 사람과 장소에 대해 역사적·고고학적 연구를 함으로써 우리는 성경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며, 성경시대의 배경 또한 좀 더 폭넓게 이해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시대의 사람, 장소 및 환경적 제약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성경의 지리적 배경은 무척 다양하며, 환경적·문화적으로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폭넓은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성경과 그 속의 역사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오늘날의 세계지도로 복원한 성경 속 장소 성경에 대한 연구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오고 있으며, 연구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의문점이 새롭게 발생한다. 오늘날 성경 역사학자와 지리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을 고고학적 유적지와 현대 도시들에 맞게 표기해야 한다는 난제에 당면해 있다. 예루살렘, 다마스쿠스(다메섹), 로마처럼 사람들이 계속 거주한데다 이름도 유지되어 식별하기 쉬운 경우도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도시와 지명 대부분은 오래전에 버려지거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자들은 매우 어려운 그 작업의 실마리를 성경에서 찾아내는데, 가장 회의적인 학자들조차 성경이 지리학적으로 매우 정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어떤 장소의 위치를 찾으려면 성경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고대의 기록과 같은 지리학적 자료를 이용하거나 가능성이 있는 도시들을 직접 답사하면서, 과학적인 연대 측정법을 이용하면 성경에서 언급되는 당대의 그곳에서 사람이 거주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한 성경 속 미스터리 성경을 처음 접하다보면 으레 겪는 난해함 중 하나는 연대이다. 오늘날의 나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차이가 당시 사람들의 수명 기록에 성경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아 성경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도 사실이다. 신약성경의 경우는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기록된 로마 시대가 배경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연대학은 훨씬 어렵다. 구약성경은 어떤 기간을 묘사할 때 흔히 연도를 사용하는데, 이때의 연도는 보통 월(months)과 일(days)을 반올림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대단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통치기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이런 반올림법은 상당한 편차를 유발한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그들의 시간 계산법은 우리의 계산법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비교적 정확한 천체 관측을 했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연대조차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연대를 오늘날의 연대로 바꾸는 방법도 확실치 않다. 고고학적 연대 추정법으로 역사적 연대를 입증하는 것 역시 난해한 문제다. 구약성경의 연대는 왕의 통치와 같은 주요 정치적 사건과 관계가 깊은 역사적 사건 위주의 연대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고고학적 연대는 물질문명의 변화를 기초로 한다. 가장 기초적인 시스템은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이렇게 세 가지 시대로 구분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한 사회의 기술문명 발달 수준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연대는 역사적 연대와 늘 일치하지 않는다. 새로운 왕의 출현이 곧 새로운 기술의 도래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연대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띠는 문제이며, 조만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또 다른 성경, 바이블 아틀라스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련의 사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기록한 사료를 통해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과거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고학에 대한 연구와 모든 학문적 연구는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새로운 연구 결과가 도출되어 과거에 기정사실화 되었던 정보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명제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수많은 역사적 논쟁과 의문점이 발생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는 긍정의 희망을 내포하기도 한다. 바이블 아틀라스는 각 분야의 여러 연구자들이 뜻을 모아 성경을 지리적으로 명확하게 분석하고 제시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그동안 성경이 지닌 특유의 난해함으로 성경 일독조차 어려워했던 종교인들을 비롯해, 서양 역사의 근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일반 독자들까지 교양서로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바이블 가이드이다.

  •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
    그림 속 인간과 시대의 자취를 탐구하는 법의탐적론 
    저자
    문국진
    정가 25,000원
    판매가 23,750원 (5% 할인, 적립금 1,250p)

    우리나라 제1대 법의관이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창립멤버인 문국진 박사(1925년 생) 스스로 생전의 마지막이라 단언하는 저서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가 출간되었다. 죽은 이의 인권을 위해 법의학이라는 한 길을 오롯이 걸어온 저자가, 스스로 연구한 법의탐적론을 통해 고야의 그림 <벌거벗은 여인>을 두고 200년간 이어진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저자가 세계최초로 시도한 법의탐적론(法醫探跡論, Medicolegal Pursuitgraphy)은 남아 있는 창작물 등의 흔적을 탐지하고 탐구하여 진실을 밝힌다는 의의를 두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문호나 장인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정신분석을 실시해 살아생전 작가의 정신적 질병이나 당시의 심리 상태 등을 알아내는 병적학과, 각종 문건 분석을 마치 시체를 부검(剖檢)하듯 시행하는 ‘문건부검(Book Autopsy)’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법의탐적론은 저자의 오랜 경험과 연구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앞서 언급된 고야를 비롯해 쿠르베와 휘슬러, 들라크루아, 칼로,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고흐, 달리, 앙소르, 얀센 등 예술사의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작가들이 남긴 그림과 자료를 분석해 예술을 법의학적인 시선으로 새롭게 안내한다.     전문 영역을 다룬 드라마 가운데 대중들의 흥미를 가장 잘 자아내는 드라마가 법정드라마, 의학드라마, 탐정드라마다. 모두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핵심적인 주제로 다룬다. 법의학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좇노라면 이들 드라마의 영역이 다 겹친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예술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흥미는 배가 되고 감각의 즐거움, 예술적 통찰의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다. 문국진 선생의 ‘법의탐적론’은 바로 그 오묘한 접점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문 선생이 이런 학문적 접근을 세계 최초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의학도로서 법학을 공부하고 한국 법의학의 선구자가 된 문 선생은 미술과 음악 등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우뇌적 직관과 좌뇌적 지성이 어우러져 빛을 발하는 법의탐적론적 탐구는 문 선생 같은 분이 아니면 접근조차 쉽지 않다. 후학들이 뒤를 잇는다면 앞으로 미술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한층 심화시켜줄 것이고, 미술뿐 아니라 삶과 역사에 대해서도 진일보한 관점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 책의 발간에 기대 법의탐적론의 창창한 미래를 기대해 본다._ 서울미술관 관장 이주헌 법의학으로 보는 미술 속 인권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생명’이며 다른 하나는 ‘권리’이다. 의학 중에 생명을 다루는 분야는 ‘임상의학(臨床醫學)’이고, 권리를 다루는 분야는 ‘법의학(法醫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생명에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둔다. 그러나 문화인은 목숨보다 권리를 소중히 한다. 따라서 법의학은 문화가 발달된 사회에서만 필요하며 인권을 중요시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권의 사각지대에는 늘 법의학이 있어 왔다. 인권이 침해된 사건에 있어서 법의학의 감정(鑑定)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사람 자체만이 아니라 각종 증거물들이 그 대상이 된다. 또한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신의 부검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살인 사건의 경우 간혹 그 시신을 찾을 수 없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법의감정 분야의 실정이라 하겠다.  저자는 이러한 경우 고인과 관계되는 문건이나 그들이 남긴 창작물이 유물로 남아 있다면 이를 분석해 법의학이 목적하는 인권의 침해 여부를 가려낼 수는 없겠는가를 늘 생각해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으로 정신의학에서의 병적학(病跡學, Pathography)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미 고인이 된 문호나 장인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정신분석을 실시해 살아생전 작가의 정신적 질병이나 당시의 심리 상태 등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병적학이다. 현존하지 않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문헌이나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고인의 정신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법의학계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고인의 유물이나 문헌 및 작품 등을 통해 법의학 분야에서도 사인이나 인권의 침해 여부를 추출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의 가능성 여부를 시험해보기에 이르렀다. 각종 문건의 분석을 마치 시체를 부검(剖檢)하듯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저자는 이러한 문헌검색을 ‘문건부검(Book Autopsy)’이라 칭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창작물 등의 흔적을 탐지하고 탐구하여 진실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법의학의  이런 분야를 ‘법의탐적론(法醫探跡論, Medicolegal Pursuitgraphy)’이라 칭하기로 했다.법의탐적론의 대상이 되는 각종 창작물 중에서도 미술 작품은 가장 좋은 분석 대상이다. 화가는 역사화나 인물화 등을 그릴 때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증을 참작하고 철학적 지성과 자신만의 미적 혼(魂, 예술적 영감)을 융합해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곧 시대를 증언하는 무언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행위는 보는 이의 안목과 전문성에 따라 그 해석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그림을 감상한다는 행위 자체가 제2의 창작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그림을 보는 관람자 각자의 전문성에 비추어 마음속에 자신만의 독특한 감상 결과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림을 감상할 때 화가의 기교보다 현 시대적 비판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의 존엄성이 당시에 어떻게 이해되고 표현되었는가를 중점적으로 기술했다.역사적으로 유명한 그림의 법의학적 재인식이 책의 <1부>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을 다룬 그림들을 모아서 법의탐적론적 평가와 해석을 덧붙였다. 그중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가 그린 <옷을 벗은 마하>는 당시 가톨릭국가이던 스페인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 종교재판에까지 회부된 그림이다. 재판에서 고야는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가를 밝히지 않고 끝내 함구했기에 지체 높은 가문의 ‘알바(Alba) 공작부인’과 당시 재상이던 마누엘 고도이(Manuel de Godoy)의 애인 ‘페피타 츠도우(Pepita Tudó)’를 놓고 200여 년간 논쟁이 지속되었다. 이 사건은 소설과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최근까지도 화제가 되었다. 저자는 그림 속 얼굴들의 생체정보 분석을 실시하여 모델의 신원을 증명해냈으며, 이러한 연구 결과 이외에도 저자는 다른 역사적인 그림과 그에 연루된 사건에 관해 조사했다. 인간과 시대상과 연계해 분석하고 탐구하여 법의탐적론적으로 결론지은 내용들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예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예술가들은 창작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찾고, 그것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창작해낼까. 2부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시작으로 모티브와 창작의 관계가 얼마나 과학적(또는 논리적, 이론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예술적(또는 독특한 상상력과 독창적 기법)으로 표현하였는지 분석했다. 예술 작품은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를 작가들이 인간 최고의 사고 능력인 상상력을 동원해 감지해낸 결정체이다. 이러한 작품 중에서도 우뇌적인 직감과 좌뇌적인 지성이 통합되었다고 보이는 작품일수록 창작의 모티브를 과학적이고도 예술적으로 표현해내어 감상자로 하여금 더욱 많이 감응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신화와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조국 멕시코의 문화적 회복과 번영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은 손을 모티브로 삼고 천착하여 오랫동안 내려오던 전통적 관념을 위대한 조각품들로 재탄생시켰다. 저자는 이러한 무수한 예시들을 법의탐적과 문건부검을 통해 분석했으며 예술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화가의 자화상과 대화하는 법의학자 화가들의 자화상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릴 당시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과거의 기억 또는 앞날의 욕망 등을 자기만의 내적 조형술로 표현한 것들도 있음에 주목했다. 이러한 자화상들을 앞에 두고 더욱 그 해석에 골몰하기도 했는데, 그러는 가운데 화가들의 자화상이 개인의 정체성은 물론 그들이 겪는 정신적·육체적 장애와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도 암암리에 표출되기 때문에 예술적 가치만이 아니라 역사적 고증의 가치로서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렇듯 그들의 자화상과 대면하다보면 그 시대의 인간과 사회상에 따라 화가가 처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당시 사람들의 권리가 얼마만큼 존중되었는가도 알게 된다. 무엇보다 화가들의 자화상은 그들 인생의 고뇌와 환희를 담은 한 권의 자서전과도 같기에 미술과 인간을 동시에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러한 면은 법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부가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라는 의견이 예술과 법의학의 연계성에 관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법의학과 미술작품이 연계된 통섭과학으로의 시도화가의 예술성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에 중점을 둔 이 책은, 같은 사건을 다룬 그림에 있어서 화가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 여하를 비교하는 등 미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더불어 그간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과 법의학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학문간의 통섭과 넘나듦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새삼 인식하게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감상하던 미술 작품에서 인권의 침해를 경고하거나 규탄하고, 또 인권의 수호를 찬미하는 등 여러 표현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다. 아마도 법의학과 미술작품이 연계된 통섭과학으로는 세계 최초의 시도로 여겨지는 이 책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는 법의학이나 법과학 또는 과학수사를 전공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의향이 있는 이들을 비롯해 일반 독자들에게 예술과 법의학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격려하는 대선배의 열정이 담긴 기록물이다.

  • 고갱 (Art Classic 13)
    고갱 (Art Classic 13)
    근대 회화에 수많은 길을 열어 준 고갱을 살펴본 책
    저자
    엘레나 라구사
    역자
    윤인복
    정가 19,800원
    판매가 18,810원 (5% 할인, 적립금 990p)

    그들은 나의 예술을 조잡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옳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나 자신도 어떤 방향으로 변해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비평이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엔 내 작품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반 고흐, 세잔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고갱, 그러나 세 사람 모두 당대에는 세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활동한 시대는 르누아르, 마네, 드가, 모네 등이 일으킨 인상주의가 성행하였고 쇠라와 시냐크를 축으로 점묘 기법과 신인상주의가 새롭게 각광을 받을 때였다. 자연을 양식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인상주의는 주로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 풍경화의 형태로 나타났다. 즉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는 과학적 발전이 반영되어 기법이 달라졌을 뿐 본질적으로 사실주의의 연장이었다. 이처럼 사실 묘사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대상이 주는 ‘내면의 울림’에 대한 표현을 우선한 반 고흐나 고갱의 그림은 매우 낯설고 서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당신은 내가 예술의 중심지 파리를 떠난 것이 잘못이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오래 전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어. 나의 예술의 중심지는 내 두뇌일 뿐, 결코 파리가 아니야. 나는 강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않고, 내 안의 것을 반드시 완성시킬 것이기 때문이야.언론인 아버지와 페루 식민 귀족 가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고갱은 정치 문제로 일찌감치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지내며 일찌감치 이국풍의 생활을 맛본다. 프랑스로 돌아와 교육 및 군 복무를 마치고 주식 거래인이자 평범한 가장이 된 그는, 뒤늦게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다가 피사로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린다. 하지만 고갱은 자연을 이상화하거나 감성적으로 재현한 예술을 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눈의 감각을 세밀하게 구성하는 인상주의로부터도 멀어지고, 결국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가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떠난다. 브르타뉴에서 고갱은 에밀 베르나르 등 젊은 화가들과 굵은 윤곽선, 장식적인 색면으로 구성되는 회화 유파인 ‘퐁타방파’ 혹은 종합주의를 창립하고, 아를에서 일 년 남짓 반 고흐와 함께 작업하기도 한다. 좀더 순수하고 ‘야만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 남태평양의 타히티까지 간 그는 회화적 절정기를 맞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등 대표작들을 만들어낸다. 몇 년 간의 생산적인 작업 후 고갱은 자신이 회화의 미래임을 확신하며 파리로 돌아오지만,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차가운 대중과 평론계의 반응에 부딪친다. 드가와 말라르메 등 소수는 그의 그림을 극찬했지만, 그것으로는 생활고가 해결되지 않았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다시 열대로 돌아간 그는 마르키즈 제도에서 궁핍과 병마와 싸우며 그림을 그리다가 고독하게 생애를 마친다. 예술가는 야만성을 완전히 상실했고, 본능적 직관에서 비롯되는 상상력마저도 잃어버렸지. 결국 혼돈에 빠진 군중에게로 전력해야 했고, 혼자 있을 때는 길 잃은 사람처럼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지.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외로움을 권할 수는 없는 것이네. 외로움을 견디고 혼자서 행동하려면 그럴 만한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배운 것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족쇄였을 뿐이야. 이제 나는 이렇게 외칠 수 있지.“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 나는 눈곱만큼밖에 모른다!” 그러나 그 눈곱만큼의 지식은 순전히 내 것이야. 고갱은 근대 회화에 수많은 길을 열어주었다. 단순하고 굵은 윤곽선과 넓고 평평한 색면의 강렬한 조화는 1890년 이후 널리 보급된 아르누보를 예견하였고, 비사실적인 색채로 그림을 구성한 점은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로 이어졌다. 게다가 유연한 형태와 목판화 같은 거친 질감은 표현주의로, 이성으로부터 벗어나 내면세계와 무의식적 직관에 기대려는 경향은 초현실주의로 흘러 들어간다. 또한 가족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리고 먼 이국에서 비로소 자신의 화풍을 찾았으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여 고국을 등진 채 그림을 그리다 죽은 그의 삶은, 영국 소설가 서머셋 몸의 명작 《달과 6펜스》를 탄생시키는 등 ‘천재 예술가’에 대한 현대적 관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갱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물론 먼 이국 땅에서 고독하게 탐구했던 그의 예술론을 편지와 저술로 담아낸 이 책은, 독자에게 그의 천재성을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다.꿈꾸면서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내 영혼 안에서, 내 주위에서 처연히 흐느끼고 있는 것을 이해 가능한 알레고리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꿈-그림은 끝났습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우리는 누구인가’, ‘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
    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
    에드바르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그의 '시각적 자서전' 
    저자
    이리스 뮐러 베스테르만
    역자
    홍주연
    정가 33,000원
    판매가 31,350원 (5% 할인, 적립금 1,650p)

    에드바르 뭉크처럼 자신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솔직하게 드러낸 화가도 드물다. 유전된 광기, 불행한 가족사, 사랑의 좌절 끝에 스스로를 세상에서 단절시킨 후에야 평안을 찾은 그에게 그림은 매순간의 정신 상태를 포착하고 이해하기 위한 스냅샷이자, 심연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절벽 위 한줄기 길이었다. 뭉크는 화가가 된 1880년대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화 70여 점과 판화 20여 점, 수채화와 드로잉 100여 점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러한 자기 분석을 통해 그는 렘브란트, 고야, 반 고흐 같은 위대한 자화상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게 되었다. 자화상에서 뭉크는 죽음, 사랑, 섹슈얼리티, 삶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뿐만 아니라 국외자局外者(그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명해진 한참 후에야 고국 노르웨이에서 인정받았다)로서 자신의 위치를 고찰했으며, 이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와 고독에도 공명한다. 우리는 그의 자화상을 통해 한 남자의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를 엿볼 수 있으며, 자연주의에서 상징주의와 표현주의로 나아가는 예술 사조의 변화도 목격할 수 있다.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이 책은 뭉크의 화집이자 그가 평생 남긴 행적 및 기록들을 예리하게 분석한 평전이다. 또한, <절규>의 황혼녘에서 마지막 자화상 <새벽 2시 15분>의 여명에 이르는 그림들을 통해 뭉크의 내면을 꼼꼼히 읽어낸 미술비평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뭉크의 삶에 존재한 모든 굴곡을 추적하면서, 이 그림들이 그의 내밀한 경험들을 얼마나 강렬하게 포착해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좀처럼 접하지 못한 중년 이후의 작품들을 다수 포함시켰으며, 또한 화가가 자신을 보는 시각을 깊이 있게 탐구하기 위해 자화상이 아니라 해도 주요 작품들은 빼놓지 않았다."나의 예술은 가라앉는 배에서 무전 전신기사가 보내는 경고 전신과도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불안이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삶에 대한 두려움과 병이 없었다면 나는 키를 잃은 배와도 같았을 것이다."에드바르 뭉크는 1863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5살 때 결핵으로 사망했고, 남매 중 가장 가까웠던 누나 소피에 또한 그가 14살 때 결핵으로 죽었다. 목사의 아들이었던(뭉크Munch는 수도사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매우 엄하게 키웠고, 죽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로 겁을 주기도 했다. 남매들 중 결혼을 한 사람은 남동생 안드레아스뿐이었으나 몇 달 후에 죽었으며, 여동생 하나는 젊은 나이에 정신병 진단을 받았다. 1889년에는 아버지마저 작고하는데, 아버지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죄책감 때문인지 더욱 절망에 빠진 뭉크는 자살을 고려하기도 했다.  <절망>은 뭉크가 해질녘에 산책을 하던 중 경험한 불안감을 최초로 표현한 작품이다. 모자를 쓴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있고 다른 두 사람은 다리 위를 걸어간다. 뒤에는 언덕으로 둘러싸인 피오르가 보인다. 해가 지면서 강렬한 붉은색이 풍경을 물들이고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심한 피로감에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불타는 듯한 구름이 짙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피 묻은 검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으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뭉크의 가장 유명한 그림 <절규>는 이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인물은 이제 관람자들을 향해 돌아서 있으며 벌어진 입과 텅 빈 눈을 가진 무성의 존재이다. 그는 자신이 지르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다.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그림 속 공간은 불안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며, 과감하게 단순화된 인물과 배경 묘사는 관람자를 화가의 주관적 감정 상태에 집중시킨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뭉크의 또 다른 유명한 그림 <마돈나>는 보통 임신한 여성으로 해석된다. 같은 주제로 제작한 판화의 테두리에는 태아와 정자가 그려져 있는데, 여성의 본질은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 그림은 <담배를 든 자화상>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다. 자화상에는 머리와 담배를 든 손 사이에, <마돈나>에는 머리와 벌거벗은 몸 사이에 긴장감이 존재한다. 여성이 머리를 몸에 바침으로써 창조성을 지닌다면, (뭉크를 비롯한) 남성의 창조성은 머리와 손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다. 한편, 수채화 <고통의 꽃>은 뭉크와 닮은 얼굴의 남자가 맨몸으로 시커먼 흙 속에서 나오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의 심장 근처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와 흙으로 스며든다. 화가는 왼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오른손은 위로 올려 고통으로 젖혀진 머리를 붙들고 있다. 눈 부분이 눈가리개처럼 까맣게 칠해진 화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가장 깊은 내면의 감정인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의 오른쪽 팔꿈치는 피가 땅에 스며드는 지점에서 솟아오른 ‘고통의 꽃’을 가리키고, 왼쪽 팔꿈치는 아래쪽 흙을 향해 있다. 예술의 원천은 화가의 심장에서 솟는 피다. 하지만 꽃은 피에서 바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고통이 예술로 바뀌는 것은 오로지 ‘흙과의 연결’, 즉 실제 삶과 연결된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고통의 꽃은 뭉크가 예술가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의 바탕이었다. 이 그림 속 남자는 <마돈나>의 여성과 자세가 비슷하다. 여성이 고통 속에 아이를 낳듯이 예술가도 고통 속에서 예술을 창조한다. 이처럼 여성의 생명 창조와 남성의 예술 창조를 대등하게 본 뭉크의 시각은, 그가 자신의 그림을 ‘고통 속에 태어난 자식들’로 표현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길은 나를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가 있는 절벽 가장자리로 이끌었다. 가끔은 그 길로부터 도망쳐 사람들 사이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매번 다시 절벽 위로 돌아와야 했다. 그것이 심연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걸어야 할 나의 길이다."1898년에 뭉크는 툴라 라르센을 만났다. 그는 이 아름답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창작에 있어서도 왕성한 시기를 맞아 오랫동안 구상해왔던 연작 '생의 프리즈'를 완성한다. 뭉크가 툴라를 여성성의 전형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그가 쓴 편지에 잘 드러난다. 나는 마치 수정처럼 변화하는 수천 가지 표정을 가진 여러 여자들을 봐왔어. 하지만 오직 세 가지 강렬한 표정만을 분명하게 지닌 여자는 만나본 적이 없어. (...) 당신은 가장 깊은 슬픔의 표정을 갖고 있어. (...) 마치 옛날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성화 속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처럼 말이지. 그리고 당신이 행복할 때-나는 그토록 빛나는 기쁨의 표정을 본 적이 없어. 마치 당신 얼굴에 갑자기 햇빛이 쏟아지는 것 같아. 그리고 당신이 가진 세 번째 얼굴, 이것은 나를 두렵게 만들어. 그것은 운명의 얼굴, 스핑크스의 얼굴이야. 그 안에서 나는 여성의 위험한 특성을 발견하지.이 편지는 뭉크가 ‘생의 프리즈’를 대표하는 <생의 춤>을 그리던 시절 쓴 것이다. 이 때문에 <생의 춤>에서 붉은 옷의 여성은 흔히 툴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여성은 뭉크의 첫사랑 밀리 타울로브일 것이다. 뭉크는 자신의 과거와 춤추고 있는 것이다. 툴라는 다른 두 여성, 왼쪽에서 꽃을 꺾으려 하는 흰 옷의 여성과 오른쪽에 서 있는 검은 옷의 여성으로 나타난다. 뭉크는 <생의 춤>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내 (진짜) 첫사랑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 그녀는 사랑의 꽃을 꺾으려 하지만 꽃은 꺾이지 않는다. 반대편에는 검은 옷을 입은 그녀가 슬픈 얼굴로 춤추는 커플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그녀와의 춤을 거절당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거절당한 채.툴라는 결혼을 원했지만, 비극적 가족사와 자신의 정신병 유전이 두려웠던 뭉크는 자신에겐 예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회피하곤 했다. 툴라와의 격렬한 관계는 1902년에 비극적인 파국을 맞는다. 툴라와 다투던 뭉크가 자신의 왼손에 권총을 쏜 것이다. 툴라는 얼마 후 뭉크의 친구였던 다른 화가와 결혼했고, 뭉크는 그 후로도 십 년이 넘게 그림들을 통해 그녀와의 관계를 되새겼다. “나를 비난하지 마. 내가 삶을 살고 있지도,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슬퍼해줘. 나는 그저 고통스러운 열망을 품고 창가에 앉아 나를 둘러싼 끔찍하도록 시끄럽고 낯선 삶의 소란을 지켜볼 뿐이야.”1908년에 뭉크는 신경쇠약을 일으켰고 다음 해 봄까지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술을 끊고 국가에서 훈장을 수여받아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그는 은둔하여 작업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에켈리에 농장을 구입한 뭉크는 여생을 그곳에서 홀로 살아갔다. 이제 그의 그림은 강렬한 불안감보다는 차분한 우울함을 느끼게 하며, 붉은색보다 푸른색이나 초록색이 눈에 띈다. <자화상, 밤의 방랑자>에서 뭉크는 실내복 차림으로 한밤중에 에켈리의 휑한 방을 맴돈다. 그가 서 있는 베란다 문으로부터 내다본 풍경은 <별이 빛나는 밤>에 나타나 있다. 뭉크는 차가운 밤공기와 자신의 머리가 드리운 그림자에 자신의 고독을 투사한다. 지평선 멀리 도시의 불빛과 빛나는 별들은 광대한 공간으로 구도를 확대하면서 고독감을 더욱 증대시킨다.  그러나 작은 행복의 순간들도 있었다. <개들과 함께 있는 자화상>에서 뭉크는 애완견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뭉크의 몸 앞쪽은 환한 햇빛을 받고 있어 그가 개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화가가 뻗은 손과 개들의 주둥이 사이 공간이 그림의 중심을 형성한다. 이 공간은 비어 있지만, 곧 화가의 손과 개들이 만나면서 채워질 것이다. 기대가 현실과 만나기 직전의 짧은 순간은 모든 가능성으로 충만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마법의 순간이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화가가 스스로 짊어진 고독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뭉크가 자신을 마지막으로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그린 <자화상, 보헤미안의 결혼식>에 대해서, 그의 모델 비르지트 프레스퇴는 이렇게 기록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뭉크가 자기를 만나러 와줄 수 있냐고 했다. 그는 혼자 있었고, 전구도 장식도 달려 있지 않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만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는 내게 테이블에 놓인 과일을 권했다. 내가 손을 뻗어 사과를 집자 그가 말했다. '그렇게 앉아 있어, 그대로.' 그것이 <보헤미안의 결혼식>의 시작이었다. 내가 가야 할 시간이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계속 있으려면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러지 않는 게 좋겠지. 집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크리스마스이브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니까.'그의 마지막 자화상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강박적이고 예리한 정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구 머리가 있는 자화상>에서 뭉크의 눈은 접시 위 물고기의 눈처럼 퀭하다. 뭉크는 평생 채식주의자였지만 노년에는 단백질 섭취를 위해 생선을 먹었다. 노르웨이에서 대구 머리는 진미로 통한다. 그러나 이 자화상에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기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뭉크는 나이프와 포크를 요리에 찔러 넣으려 하는 순간 물고기와 자신의 본질적 연결고리를 느낀다. 죽은 물고기의 머리는 뭉크를 자신의 죽음과 대면시킨다. 한편 정면에서 바라본 얼굴을 묘사한 자화상 습작은 말년의 <절규>라 할 만하다. 다만 <절규>가 삶의 불안을 그렸다면 이 습작은 죽음에의 불안을 그렸다는 것이 다르다. 공포에 사로잡혀 크게 뜬 그의 눈을 마주하며, 관람자도 자신 속의 두려움과 맞닥뜨리게 된다.<자화상, 새벽 2시 15분>에서 화가는 거의 투명해 보이는 몸을 안락의자에서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단호하고 곧은 표정은 자신에게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자각을 보여준다. 주변의 공간은 녹아 사라져가며,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기다린다. 늙은 화가는 매혹과 공포에 사로잡혀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나는 갑작스럽게 혹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이 마지막을 경험하고 싶어.여든한 살의 수명을 누렸던 뭉크는 1944년 1월 23일 세상을 떠났다."뭉크는 인간을 탐구하기 위해 고갱처럼 타히티로 떠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내면에는 자신만의 타히티가 있다." 뭉크의 예술세계는 제임스 앙소르나 귀스타브 모로 같은 당시의 다른 상징주의 화가들보다 훨씬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다. 앙소르는 풍자화 전통에, 모로는 신화의 상징체계에 기대어 있지만 뭉크의 그림은 문화적 지식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끝난 뒤 북경 국립미술관에 최초로 전시된 서구 미술작품이 뭉크의 그림이었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1890년에서 1908년 사이 뭉크는 표현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1909년 귀국한 후 그는 유럽 미술의 흐름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는 큐비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추상 등에 관심이 없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뭉크의 후기 작품들이 ‘아방가르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은둔 이후로 죽기 전까지 그의 자화상들은 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감각적이었다. 이 그림들에는 뭉크의 기법적 숙련과 다양한 실험이 드러나 있다. 뭉크의 그림은 단번에 격정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갈등과 감정을 포착해내기 위해 여러 차례의 습작을 거쳐 세심하게 화면을 구성했다. 인물의 자세는 심리 상태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도록 선택되었다. 그들은 순수한 감정 자체를 굳혀낸 듯 정적이고도 극적인 모습으로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듯하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캔버스에 담아내야 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과감히 다른 모든 요소를 무시해버렸다. 그의 작품이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뭉크의 자화상은 한 회의주의자의 고백이자 역할극이다. 그러나 그의 성격적 모순은 시대의 분열을 반영한다. 이 그림들은 예술과 종교와 사회가 끊임없이 변하던 시기에 화가가 처한 현실에 대한 주관적 반응이었다. 소시민 사회에도 예술가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한 한 인간의 모습이 그의 자화상에 담겨 있다. 고독을 삶의 조건으로 선택하고 그 안에서 자아 정체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뭉크는 현대인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삶을 이해하려는 끝없는 열망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이 점이 뭉크의 자화상을 주관적인 고백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나는 미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내 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한다. 나의 그림은 자발적인 고백이며,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다.하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 비엔나 1900년
    비엔나 1900년
    19세기말 그 매혹적인 도시의 삶과 예술 그리고 문화를 읽다 
    저자
    크리스티안 브란트슈태터외
    역자
    박수철
    정가 45,000원
    판매가 42,750원 (5% 할인, 적립금 2,250p)

    1900년부터 1910년까지 비엔나는 지적 측면에서 세계적 중심지 중 하나였으나 정작 비엔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비엔나는 공명판(共鳴板)이 아니었다. 비엔나에서는 2~3천 명의 사람들이 다가올 세대의 세계를 뒤흔들 만한 말과 생각을 내놓았다.- 오토 프리틀랜더, 《동화 같은 도시의 마지막 광채》세기의 예술가를 탄생시킨 단 하나의 도시, 비엔나 19세기말 그 매혹적인 도시의 삶과 예술 그리고 문화를 읽다1800년이 끝나고 1900년이 시작되던 그 시기, 세기말에서 세기초로 넘어가던 그 몇십 년은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새로운 문화가 태동한 시기였다. 세기말의 비엔나는 새로운 사상과 개념의 실험실이자 미술 · 건축 · 음악 · 철학 · 문학 · 정신의학 등의 분야에서 활약한 유럽 전위파의 집결지였다. 그 화려한 유럽의 수도는 염세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아주 특이한 문화적 동요가 일어났으며 미증유의 탐험과 예술적인 혁신이 이루어진 무대였다. 세기말 비엔나의 문화적 대폭발은 백 년이 지난 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니, 지금의 미술 · 철학 · 정신의학 등 대부분의 학문이 바로 이 시기로부터 이어져 21세기의 학문적 · 예술적 진보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문화적 동요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비엔나 1900년》은 그 뿌리를 찾기 위해 19세기말 비엔나로 들어가 당시의 사회적 · 정치적 분위기를 비롯한 시대적 흐름을 면밀히 살펴봤다. 더불어 이 책은 그 놀라운 도시와 그곳을 주름 잡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개인과 공공기관이 소장한 700점 이상의 채색화 · 데생 · 포스터 · 사진 등으로 화려하게 소개한다. 예술가들 간의 유기적이고 긴밀한 관계 속에서 탄생한 세기말 비엔나의 삶과 예술 그리고 문화를 ‘지금, 여기’에서 다시 보자.“비엔나를 가리켜 ‘음악의 도시’라고 부르는 조심성 없는 말은 음악이 아닌 다른 예술 장르에 얼마나 오만하였던가? 비엔나는 미술과 공예, 건축과 디자인의 도시이자, 문학과 철학 그리고 심리학의 도시였다. 그 엄청난 정신의 덩어리들이 온 비엔나 시내를 채우고 있다. 변방에서 온 나그네에게 그것들은 그야말로 도전해야 할 지성의 숙제들이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즉 ‘세기말’이라고 부르는 1900년을 전후로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얼마나 많은 예술들이 바로 백 년 전의 비엔나에서 나왔던가. 미술의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건축의 바그너, 올브리히, 호프만, 로스, 음악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요한 슈트라우스, 말러, 볼프,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문학의 호프만슈탈, 슈니츨러, 크라우스 등이 다 당시 비엔나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 그뿐인가? 비트겐슈타인 등의 철학자와 프로이트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의 고향도 비엔나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 1900년 비엔나에는 이들이 다 함께 살았다. 그들 대부분은 다각적인 심미안을 가진 르네상스적 인물들이었다. 1900년의 비엔나를 안다는 것은 근대의 예술과 인문의 근원을 아는 것이고,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예술의 토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책은 비엔나란 도시의 진정한 진가를 알게 해 줄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은 유럽이라고 하면 파리나 런던 등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문화 예술에 과도하게 쏠려 있는 우리의 편식에도 새로운 자극이 될 것으로 믿는다.” 풍월당 대표, 문화예술 저술가, 정신과 전문의박종호 세계의 역사를 이끈 인물들의 도시, 비엔나 후고 볼프, 구스타프 말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 같은 선구적인 음악가들을 낳은 음악의 도시 비엔나.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의 비엔나는 왈츠와 교향곡의 도시인 동시에 미술과 건축과 문학과 철학과 정신의학이 탄생한,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산물이 집결한 문화의 도시였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키스>를 그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그리고 그를 회장으로 추대한 오스트리아 예술가협회 즉 ‘분리파’의 결성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의 예술과 문화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정표를 찍게 된다. 클림트를 비롯해 분리파에 가담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오스카 코코슈카, 에곤 실레, 요제프 호프만, 아돌프 로스 등)을 필두로, 공예 · 판화 · 그래픽 아트 · 제본 등의 분야를 종횡 무진한 빈 공방(Wiener Werkstätte)의 영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클림트 그룹의 이탈이 있기 전까지 분리파가 활동한 ‘빛나는 7년’은 다시는 필적하지 못할 수준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시기였다. 분리파 회원들이 6년에 걸쳐 공식 간행한 기관지인 《성스러운 봄》 역시 분리파의 초기 역사를 가장 의미심장하게 보여 주는 지표였다. 더불어 오스카 코코슈카, 에곤 실레,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그림은 오직 세기말의 비엔나를 상징하듯 어느 시대에서도 보지 못할 독창적이고도 내면지향적인 작품이었다. 이어 “가장 진보적인 진보주의자, 가장 현대적인 현대인, 가장 분리파다운 분리파 회원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건축가 오토 바그너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특유의 건축 양식을 창조해낸 인물이다.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요제프 호프만, 아돌프 로스도 기억할만한 세기말 비엔나의 건축가들이다. 후고 폰 호프만슈탈, 리하르트 베어-호프만, 헤르만 바르, 페터 알텐베르크, 카를 크라우스 같은 작가들과 시온주의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르츨, 단막극을 통해 병리학적 감정을 냉소적으로 진단한 극작가 아르투르 슈니츨러, 현대 의학 사상을 새로운 길을 연 개척자이자 정신 의학의 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아들러, 빌헬름 라이히, 그리고 언어철학을 선도한 프리츠 마우트너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더불어 전 유럽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아돌프 히틀러까지 모두 비엔나의 황금기를 거쳐 간 인물들이다. 카페 문인이란? 카페 밖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문제를 카페에 앉아 깊이 생각할 시간이 있는 사람이다.안톤 쿠, 《폰 괴테의 추락》새로운 문화를 태동한 장소, 카페 이 각 계의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은 그들의 보금자리이자 세기말 비엔나의 상징적인 장소인 ‘카페’에서 수시로 교류하며 그들의 사고와 정체성을 확장시켜 나갔다. 1836년에 아돌프 글라스브레너는 “비엔나에서 당신이 ‘어디서?’라고 물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카페에서’이다. 이곳 카페의 유별난 점은 귀족적 분위기가 아니라 지인, 친구, 비슷한 성향의 사람 등을 만나는 편안함이다.”라도 기록하기도 했다. 그가 이 글을 쓴 시점은 비엔나의 카페가 중산계급 문화생활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비더마이어 시대였다. 그러한 세계관은 1847년에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이 카페 질베르네스의 전통을 물려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남아 있었다. 혁명이 일어난 1848년,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은 이미 비엔나에서 가장 중요한 카페가 되었고, ‘국민 카페(Nationalcafé)’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0년 뒤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은 시인과 비평가,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민주주의자 등이 경찰 첩보원들의 밀착 감시를 받으며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1880년대에는 사회민주당원들이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에서 교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90년에는 비엔나 데카당파가 헤르만 바르의 정규 모임을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이후 문학 동아리 청년 빈 파를 결성함으로써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의 전설을 만들어 냈다.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을 거점으로 한 시인들이 비엔나 문학사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대 가운데 하나를 이끌었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훗날 크라우스는 “다른 어느 곳보다 문학 활동의 요람 역할이 된 이 카페에서는 여러 가지 병적 집착과 흥분이 동반되는 직업이 재현되었다. 하나 이상의 미덕 덕분에 이 오래된 카페는 문학사에서 확실한 영광의 장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의 후계자는 카페 첸트랄로서, 알텐베르크부터 츠바이크까지 이어지는 카페 첸트랄의 손님 명단은 마치 온갖 문학운동세력을 망라한 세기말 비엔나의 문학계를 보여 주는 안내서 같았다. 당시 비엔나의 카페 문학이 누린 대단한 유명세는 1910년에 슈테판 츠바이크가 헤르만 헤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된다. “적어도 베를린 사람들을 관찰한 바에 비춰볼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비엔나 문학 하면 날마다 모두가 둘러앉아 있는 카페의 커다란 탁자를 떠올리는 것으로 보입니다.”1900년, 비엔나에는 약 600개의 카페가 있었다. 카페 무제움(1899년)도 그중 하나였다.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카페 무제움의 엄격하고 기능이 강조된 장식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었고, ‘허무주의 카페’라는 인기 있는 별명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카페 란트만 암 링(1872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곳은 펠릭스 잘텐, 테오도어 헤르츨, 그리고 그곳에서 타로 카드 점치기를 좋아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명사들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과 배우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비엔나에서 카페 문화는 세기전환기의 예술적・지적 삶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곳에서 문학사조가 탄생하고 소멸했으며, 정치와 과학이 논의되었고, 새로운 양식의 회화・음악・건축 등이 태동한 것이다.미에서 도덕으로, 도덕에서 정치로 오늘날의 시각에서 비엔나라는 도시와 비엔나의 황금기였던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의 문화가 높게 평가 받는 것과는 달리, 1920년대의 시각에서는 추상과 순수주의에 심취한 장식이 역겨울 정도로 달콤하고 정교하게 조합된 예술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고 세계적인 차원의 의사소통에 능숙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무엇보다도 그 빛나는 문화를 낳은 오스트리아를 촌스러운 존재로 인식했다. 그러나 세기말의 비엔나는 진정한 새 시대가 펼쳐진 곳이었다. 동시대의 화가・음악가・작가・건축가 등은 상호참조적인 연결망으로 인해 언제나 다른 분야의 일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살펴보며 경쟁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다. 세기전환기 비엔나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개별적이면서 독자적이고 심지어 독창적인 위치라기보다는 ‘지속적인 거부 상태에 있는 자기중심적 존재들의 축적물’에 가깝다. 우리 입장에서 그것은 구예술과 신예술 사이의 싸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성향, 즉 영리적 성향과 예술적 성향 사이의 싸움에 관한 것이다. 영리냐 예술이냐. 그것이 바로 분리파가 던지는 질문이다.- 헤르만 바르 예술사적 관점에서 흔히 유겐트슈틸과 비엔나 분리파는 내면으로의 이동, 즉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의 후퇴에 대한 양식적・미적 표현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처음 소수의 예술가들을 전통주의, 절충주의, 과도한 역사주의 등에 맞선 낭만적 저항으로 이끈 지배적인 추진력은 당대의 조건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팽배하던 자본주의와 성공지향적 풍조에 불만을 품은 분리파는 이에 반발하면서 진보에 대한 방어적인 입장을 취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생겨난 여러 공예업체들, 그중 빈 공방은 ‘취향의 귀족화’ 다시 말해 특권계급만 가질 수 있는 사치품의 생산에 기여하고 말았다. 장인의 수준 높은 기교와 기계에 의한 단순한 생산을 차별하는 태도는, 분리파의 양식화 의지가 산업시대를 맞아 쓸모없고 구시대적으로 전락한 수동생산에 예술적 품위를 선사하는 빌미가 된 것이었다. ‘죽은’ 기계 작업과 ‘살아 있는’ 수공예 사이의 투박한 대립은 이후 오랫동안 비엔나에서 치열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현대적인 산업 발전을 향한 적대감과 현실과 유리되는 명백한 태도는 비엔나 양식의 보수주의와 고립주의, 엘리트주의와, 비민주주의 특질로 이어지게 된다. 순수주의를 향한 이들의 열망은 비엔나를 진정한 새 시대로 여는 동시에 결국 20년 뒤의 비평가들이 당시의 역사를 공격하게 만든 업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비엔나의 예술은 후기에 이르러 열성분자, 순수주의자, 엄격주의자 등의 급진적인 분열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1900년 전후의 비엔나라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었다. 비엔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많은 인물들이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사회심리적으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2년 동안 뤼거가 비엔나 시장에 선출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애썼지만, 분리파가 태동한 해인 1897년에 이르러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아마 세기전환기의 비엔나 역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열성분자들의 진입을 막으려는 헛된 시도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화가 가장 확실하게 혜택을 입었고, 또한 그것 때문에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미적 영역에서 시작된 것이 도덕적 영역으로 이동하더니, 결국 정치적 역할로 번진 것이다.“바꿀 수 없다면 잊고 사는 게 행복하지요Glücklich ist, wer vergisst, was doch nicht zu ändern ist.”- 슈트라우스의 <박쥐> 1막 피날레 중 세기의 끝에서 타오르는 여명   《비엔나 1900년》은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탄생한 시기이자, 유럽 전위파의 집결지였던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당시 비엔나를 주름잡은 역사적 인물들의 사상과 업적을 이전에 미처 보지 못한 생소한 자료들과 함께 당시의 풍경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음악의 도시로만 알려졌던 비엔나의 미술 · 건축 · 공예 · 판화 · 그래픽 아트 · 북디자인 · 패션 · 건축 · 문학 · 음악 · 과학 · 정신분석학 등 모든 분야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주목할 만한 사상과 인물들이 바로 이 작은 도시 비엔나에서 그것도 동시대에 탄생했다는 것은 가히 경이롭고도 되새겨볼만한 사건이다. 빈 공방, 빈 분리파 등 대표적인 예술가 집단을 비롯해 비엔나 악우협회, 비엔나 예술전람회 등등 각 분야의 인물들이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조류와 맞물려 어떠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 받는 문화적 산물을 창조해낼 수 있었는지 면밀히 관찰할 수 있다. ‘총체예술’이라는 이념 아래 모든 분야가 얽히고설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쌍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 시대의 예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예술, 문화, 삶’ 이 3박자의 불가분 관계를 통해 문화적 동요가 극명하게 일어난 1900년대 전후의 비엔나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해 보는 시간이다.

  • 그림속의 강아지
    그림속의 강아지
    예술작품으로 살피는 개와 인간의 사회사 
    저자
    스테파노 추피
    역자
    김희정
    정가 25,000원
    판매가 23,750원 (5% 할인, 적립금 1,250p)

    예술작품으로 살피는 개와 인간의 사회사인간과 개의 친밀한 역사는 무려 1만 4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충성스러운 눈빛과  따뜻한 감촉, 언제나 주인의 기분을 살피는 사려 깊은 성격 등 우리는 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감동을 받는다. 인류가 키웠던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개는 유일하게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며 함께 살아왔다. 이러한 개에 대한 인간의 각별한 애정은 미술의 역사 안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모네, 르누아르, 벨라스케스, 루벤스, 피카소 등 수많은 거장들이 화려한 화폭에 개의 모습을 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때로는 왕의 옆자리를, 때로는 비천한 자들의 곁을 지키는 그림 속의 개들은 서양미술의 많은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만일 당신이 굶주린 개를 데리고 와서 정성껏 보살핀다면그 개는 절대로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바로 이 점이 사람과 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 마크 트웨인 인류 문화에 가장 깊이 뿌리내린 동물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의 파수꾼 ‘케르베로스’, 호메로스의《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충견 아르고스 등 문학과 예술 안에서 개의 역사는 매우 깊다. 서사시《오디세이아》를 보면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영웅 오디세우스를 유일하게 늙은 개 아르고스만이 알아보는 장면이 있다.“엎드려 있던 개는 오디세우스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반가운 마음에 두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었지만, 기운이 없어서 주인에게 달려가지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흘렸다. 충직한 아르고스는 20년 만에 돌아온 주인을 보고는 비로소 두 눈을 감고 숨을 거두었다.”고대 이집트 무덤에서는 주인과 함께 묻힌 개의 미라, 로마 제국의 도시 폼페이 유적에서는 화산이 폭발하던 순간 주인의 곁을 지킨 개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동양에서는 고대 중국에서 12간지의 동물 중 하나로 개가 신성시되어 일찍이 1세기 무렵부터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인류 역사 초기에 개는 애완이 아닌 사냥과 목축이라는 실용적인 임무를 맡고 있었으므로, 대부분의 고대 작품에서 개들은 집을 지키거나 주인과 함께 사냥을 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특히 그리스의 채색 도자기나 이집트 왕가의 황금 장식품을 보면 주인과 함께 들판을 달리는 활기찬 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사냥개’로서 표현된 개의 도상은 이후 18세기까지 중요하게 이어지는데,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의 귀족들 사이에서 사냥이 필수 교양으로 장려되면서 작품 안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되었다. 생존을 위한 가장 훌륭한 사냥꾼사실 인간이 가정에서 애완견을 키우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중세까지 인간 사회에 ‘애완견’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에게 개는 오로지 사냥과 수색을 위해 필요한 존재였다. 종교적 엄숙함을 강조한 중세 분위기 탓에 그림에 동물을 그리는 일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에, 개는 사냥 장면이나 일부 수도회나 성인들의 일화에 한정적으로 그려졌다. 당시 개와 함께 묘사된 단골 성인은 순례자들의 수호자인 로코 성인이다. 로코 성인을 소재로 한 그림에는 언제나 빵을 물고 있는 귀여운 개가 함께 등장하는데, 흑사병에 걸려 홀로 앓고 있는 가엾은 성인을 이 개가 돌봐주었다고 한다. 이후 중세와 르네상스의 귀족 남성들 사이에서 필수 교양으로 사냥이 큰 인기를 끌면서 예술작품에 사냥개 무리가 더욱 자주 그려지게 되었다. 좋은 혈통으로 잘 훈련된 사냥개들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책에 실린 세밀화부터 궁전을 장식한 프레스코 벽화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의 거의 모든 미술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개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이탈리아 만토바의 곤차가 집안은 궁전을 장식한 프레스코화에 개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 후에도 사냥개들은 유럽 왕실과 지배층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오랜 품종개량을 통해 작고 귀여운 애완견이 나타나게 되면서 이제 개들은 가족의 일원이 되어 부르주아 가정의 안방까지 차지하게 되었다.왕실의 품격, 부르주아 가정의 귀염둥이고양이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달리 개는 일찍이 유럽의 왕실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고귀한 가문의 개들은 마치 사람처럼 단독 초상화로 그려지기도 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그 후의 왕들은 자신이 아끼는 개를 쓰다듬으며 초상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18세기 유럽에서는 왕실 초상화에 개들이 공식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영국과 스페인의 궁정 화가였던 안토니 반 다이크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군주 옆에 다양한 개들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개에 관한 이러한 선호 풍조는 18세기 중반부터 극치에 달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개를 기리는 무덤이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유명 건축가가 개집의 설계를 직접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유행처럼 번진 개 무덤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대립을 악화시키는 구실이 되기까지 했다.이후 개는 점차 도시와 부르주아 가정이라는 새로운 공간 속으로도 들어오게 되었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우리는 고양이와 담비, 앵무새, 이국적인 외모의 표범 등 많은 종류의 애완동물을 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강아지는 다른 동물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지난 수세기 동안 사냥개가 귀족의 신분을 상징하며 스포츠를 좋아하는 왕이나 귀족들의 옆자리를 장식하는 고전적인 역할을 했다면, 근세의 애완견들은 정다운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람들과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했다. 인상주의나 사실주의를 비롯한 당시의 예술 작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장식품이 아닌, 마치 인간처럼 대우받는 개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기쁨을 선사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현대에 들어와 개와 강아지는 회화를 넘어 사진, 만화,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이제 개는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일상의 행복감을 전하는 마스코트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세기의 축음기 광고에 등장한 강아지 니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니퍼의 옛 주인은 살아있었을 때, 취미로 축음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곤 했었다. 어느 날 화가는 축음기의 나팔관 안을 들여다보며 죽은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니퍼를 보게 되었고 이에 감명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899년에 한 축음기 회사에서 이 그림을 사들여 광고에 활용하였다. 애틋한 니퍼의 모습은 이후 음악 산업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외에도 정다운 풍경을 주로 그린 화가 노먼 록웰의 삽화에 등장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강아지, 앤디 워홀의 판화 속 명랑한 푸들,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스누피와 영화 <101 달마티안>에 등장하는 강아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따뜻한 행복감에 젖어들게 한다. 지난 수천 년 간 미술의 역사에서 이어져온 개와 강아지의 다양한 도상을 감상하며, 우리는 인간과 개가 나눈 끈끈하고 오랜 우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에서 지금까지, 언제나 우리의 곁을 지켜온 그림 속 이 사랑스러운 동물의 모습에서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될 것이다.당신이 우울할 때 곁에 있는 개가 위로가 되는 것은그들에게 아무런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서양 격언) 

  • 광물,역사를바꾸다
    광물,역사를바꾸다
    인간과 광물의 관계로 돌아보는 문명의 역사 
    저자
    에릭 샬린
    역자
    서종기
    정가 18,000원
    판매가 17,100원 (5% 할인, 적립금 900p)

    인간과 광물의 관계로 돌아보는 문명의 역사인류 문명의 역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식물의 재배와 동물의 사육으로부터 시작된 역사는 문명의 방향이 도시 생활과 재화 생산, 교역으로 변해감에 따라 그 관심사가 여러 금속과 다양한 원석 및 귀금속류로 옮겨가게 되었다. 지난 2011년에 출간된《식물, 역사를 뒤집다》에서는 50가지 식물을 통해 문명의 변천사를 살펴보았으며, 그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책은 광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의 조상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연과 인류의 관계는 180도 달라졌다.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지구상에 뿌리내렸던 그 어떤 생물종도 인간만큼 진화 과정에서 자연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는 못했다. 이 책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순간들을 바꾸었던 50가지 광물과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인류가 일군 눈부신 문명의 흐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는 힌트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우연히 발견된 은광이 가져온 아테네의 번영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에서 우연히 발견된 거대한 은광은 서유럽 문명을 지킨 일등 공신이었다. 기원전 483년경, 아테네 사람들은 우연히 아티카 동부 해안의 라우리온에서 거대한 은광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뜻밖의 횡재인 이 은광의 수익을 조금씩 나눠 가지는 대신 해군전함 200척을 건조하는 데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페르시아가 두 번째로 아테네를 침공했을 당시 그리스는 거의 멸망 직전에 와 있었다. 숫자로는 페르시아 함대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테네 함대는 적을 좁은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쟁에서 동맹군을 이끈 아테네는 에게 해를 지배하며 화려한 제국을 건설했다. 고대 최강의 무기 ‘그리스의 불’을 만든 아스팔트현대사회에서 아스팔트는 도로와 고속도로, 혹은 인도 및 보도를 포장하는 콘크리트의 재료일 뿐이지만 역사 속에서 아스팔트는 중세 초까지 가장 강력했던 무기, ‘그리스의 불’을 만들던 중요한 원료였다. 아스팔트는 인화성 반 액체 물질로, 불꽃이 닿으면 발화하는 특성이 있다. 화약이 등장하기 전까지 서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로 이름을 날렸던 ‘그리스의 불’은 주로 해전에서 큰 힘을 발휘했는데, 꺼지지 않는 불길이 바다 위에서 목재로 만들어진 전함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원자폭탄과 같았던 그리스의 불에 대한 정보는 극비 사항으로 다뤄졌으며, 이 물질은 500년 동안 비잔틴 제국과 멸망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도교 세계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나폴레옹을 죽인 아름다운 녹색 벽지나폴레옹 사후 그의 머리카락에서 고농도의 비소가 검출되면서 독살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이보다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은 황제의 거처를 멋지게 장식한 에메랄드 빛깔과 금색 벽지에 비소를 함유한 ‘셸레의 녹색’ 안료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의 습한 기후로 인해 벽지에서 자라난 곰팡이는 녹색 안료 속에 포함된 비소를 수소화비소로 변환시켰고, 이것이 위대한 황제를 천천히 중독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강철 갑옷이 가른 백년전쟁의 승부1415년 10월 25일은 아쟁쿠르 전투가 벌어진 날이다.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프랑스 북부의 진흙탕에서 벌인 아쟁쿠르 전투는 사실 양국의 오랜 분쟁사인 백년전쟁 중 벌어진 중요한 교전으로, 이 전투의 승패를 가른 것은 다름 아닌 강철 판금 갑옷이었다. 백년전쟁 시 잉글랜드는 대부분의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서 강철 갑옷을 입은 프랑스에게 참패하여 결국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비참한 최후를 맞은 시계 공장의 라듐 소녀들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한 1898년 당시, 당대 최고의 석학들조차 방사능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지 잘 몰랐다. 이로 인해 벌어진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병사들의 손목시계를 제작했던 U.S. 라듐 사에서 ‘언다크undark’라는 발광 페인트를 시계 숫자판에 칠하던 어린 여직공들에게 일어났다. 공장에서는 시계의 작은 숫자를 칠하는 붓 끝을 입술과 혀로 다듬도록 가르쳤고, 따라서 소녀들은 작업 중에 대량의 유독성 페인트를 섭취하게 되었다. 직원들은 자신이 위험한 방사능에 노출된 줄도 모른 채 라듐 페인트를 눈 화장과 손톱 장식용으로 썼으며, 이가 환히 빛나길 바라며 치아에 바르기도 했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얼굴이 기형적으로 변하는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간 후에야 U.S. 라듐 사는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이 판례는 미국의 노동안전기준을 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앰버로드’와 세계 제8대 불가사의고고학자들에 의하면 호박은 신석기시대부터 오늘날 ‘앰버로드’로 알려진 발트해와 지중해 사이의 교역로를 통해 거래되었다고 한다. 중국과 지중해를 잇는 ‘실크로드’와 마찬가지로, ‘앰버로드’는 하나로 이어진 길이 아니라 북유럽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각종육로와 수로의 교역망을 가리킨다. 가령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호박은 발트 해에서 자연석이나 보석 상태로 상인들 사이에서 건너건너 팔리면서 복잡한 거래망을 따라 이집트로 실려 간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궁전에는 한때 세계 제8대 불가사의로 불린 ‘호박방’이 있다. 천장과 벽면이 황금과 6톤 가량의 호박으로 꾸며진 이 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파괴되었다가 2003년에 푸틴 대통령이 이를 복원하면서 세상에 다시 공개되었다.지구상의 여러 광물들은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더 편리하고 나은 삶을 가져다주었다. 아연으로 만든 휴대용 건전지는 전자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텅스텐의 등장은 어두운 밤거리를 환하게 밝혔으며, 가솔린 자동차는 인간의 활동 범위를 크게 넓혀주었다. 하지만 그 반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 19세기에 피아노가 유행하면서 상아의 원천인 아프리카코끼리는 멸종에 이를 정도로 죽임을 당했고, 엄청난 핵에너지를 지닌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등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축복인가 재앙인가. 2200년에 석유가 바닥나 인류 전체가 석기시대 수준으로 몰락할 것이라는 허버트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필연적으로 소진될 운명인 광물 자원의 지혜로운 쓰임에 대해 인류가 고민해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 도서관의 탄생(절판)
    도서관의 탄생(절판)
    동서고금의 도서관에 관한 모든 역사
    저자
    스튜어트 A. P. 머레이
    역자
    윤영애
    정가 25,000원
    판매가 0원 (100% 할인, 적립금 1,250p)

    "위대한 도서관은 건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스코틀랜드 역사가 존 힐 버튼, 《북 헌터The Book-Hunter》  책과 사람 그리고 도서관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가장 영속적인 숭배 대상이 되는 ‘책’과 그 책들의 고유 공간인 ‘도서관’이 어떠한 역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기록한 책이다. 책을 향한 인간의 지적 욕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끓어올랐으며, 인간은 책의 숭고함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오늘날의 도서관을 증축하기에 이른다. 역사적 전환점에 있어 인류에게 큰 의지가 되었던 장소인 도서관을 바탕으로 독서가 갖는 불멸의 힘을 재삼 설파한 이 책은 경제 위기의 시기에 왜 도서관 이용자 수가 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질문과 그에 대한 결과를 담은 바스베인스의 서두를 시작으로 책과 도서관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찰하게 한다. 일례로 2008년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뉴욕에서는 도서관 출입자 수가 전년도보다 13퍼센트 증가했고, 대출 도서는 4백만 권 가까이 늘어난 2,110만 권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미국 전역에서 비슷하게 나타나 미국도서관협회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도서의 대출이 활발하다고 밝혔다. 미국인들은 2008년에 도서관을 13억 회 방문했으며, 20억 권 이상을 대출했다. 둘 다 10퍼센트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미국도서관협회의 짐 레티그 회장은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국가적인 현상입니다. 도서관 이용이 전국적으로 증가했습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인류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펼쳐지는 이 숭고한 역사에 대한 감동적인 서술이다. 글쓰기의 기원과 초창기의 기록을 시작으로 지역과 국가에 따른 도서관의 특징 등을 요약한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통시적 사관으로 도서관의 역사를 설명했으며, 후반의 4분의 1가량은 세계유수의 도서관을 개괄적으로 다뤘다. 최초의 도서관이 탄생한 역사부터 현재에도 각광받는 전 세계 주요 도서관의 역사는 물론이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많은 이에게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들의 지독한 책 사랑과 그와 관련한 일화에 이어 책을 향한 소유욕에 얽힌 수많은 전쟁의 비화까지 담았다. 게다가 접하기 어려운 고대 기록물들의 이미지를 포함한 풍부한 삽화와 실사 등은 책의 내실을 더했다. 100개의 일러스트와 80개의 컬러도판이 들어가 있어 고대부터 중세 등에 존재한 도서관 내부와 외관, 물품 등을 볼 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는 약 50개 정도의 세계 각국의 도서관을 실사와 함께 설명해 쉽게 접하기 어려운 타국의 도서관 문화를 보여준다.《도서관의 탄생》은 책과 사람과 도서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로 애서가와 장서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사람이 돈과 책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다.”리처드 드 베리“이 책들, 얼마나 큰 행복인가!책은 우리를 절대 고갈시키지 않는 친구이다.세상이 냉담하다고?이곳은 아름다움과 달콤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피난처이다.이곳에서라면 근심을 잊을 수 있고 영혼도 쉼을 얻을 수 있다.”헨리 M. 베일리, 《도서관 사색》오, 책!아직 펼쳐보지도 않은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저 광경을 보라.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보다도 더 경이롭게 빛나는 저 책들을. 늘 내 목마름의 대상이 되는 저 책들을. 인류가 만든 가장 숭고한 건축물인 도서관에서 나, 쉼을 얻었노라  서가 사이에서 퀴퀴하게 묵은 종이 냄새를 맡으며 손때 묻은 낡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오늘을 살았고, 내일을 꿈꿨노라 인간, 책 그리고 도서관이 세 단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대공황의 암흑기에 어느 애서가는 도처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상황을 보며 독서가 갖는 불멸의 힘에 대해 시의 적절한 논평을 남겼다. "지금은 책을 버릴 때가 아니다. 집을 버리고 유럽 여행을 취소하고 승용차를 포기하더라도. 책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위로하고 다시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은행과 문명이 이미 파괴되었고 정부가 위험에 처했으며 모든 사람이 바보가 되었다는 것까지도 책이 알려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책과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도서관은 인류의 집단적인 기억이다.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선조가 후대에 알리거나 계몽하기 위해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하소설과도 같다. 따라서 모든 도서관은 다음 세대가 이 도서관의 내용물을 이용할 것이라는 신념의 결과물이다.                 도널드 G. 데이비스 주니어이 책은 그동안 발간된 도서관사에 관한 도서들 중에서도 감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동안의 역사적 공백을 채우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다른 도서관 관련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사진 자료는 전공자와 비전공자 모두에게 도서관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데 일조할 것으로 확신한다. 게다가 동서고금의 도서관사를 친절하게 한 권으로 엮은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도서관사는 어느 한 단면만을 이해한다고 저술되는 책은 아니다. 특히 아슈르바니팔 왕궁도서관에서부터 미 의회도서관에 이르는 수많은 도서관의 역사를 한 권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변화시켜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동서고금의 도서관사를 다루어 이 분야에 금자탑을 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남태우“인간은 영면하고 그의 육체는 땅에 묻히며,동시대 사람들도 모두 이승을 떠난다.그러나 글로 쓰인 말은 그에 대한 기억이 되어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책이 집이나 무엇보다 낫다.책은 성이나 사원의 돌기둥보다 더 아름답다.”고대 이집트의 시이집트와 페르가몬의 도서관 경쟁으로 탄생한 양피지 최초의 도서관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기원전 3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부터 아프리카 나일 강 유역에 걸친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농경 지대에서 최초로 글쓰기라는 개념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이 지역이 바로 초기의 도서관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도서관으로는 시리아 남부에 있는 에블라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기원전 2500년대의 상업 중심지였던 에블라의 도서관은 두 번에 걸쳐 파괴되었는데 복구되었던 첫 번째와는 달리 두 번째로 파괴된 기원전 1650년경에는 그대로 모래 속에 잠겨 버렸다. 이후 1970년대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쐐기문자가 새겨진 2만여 개의 점토 서판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에블라 도서관의 전설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이후에는 오늘날처럼 수많은 항목을 목록화한 최초의 도서관 형태를 띤 니네베 도서관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등이 건축되었다. 고대의 도서관은 통치자의 책에 대한 집착 수준의 애착과 더불어 우후죽순으로 번성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재미있는 역사가 하나 더해진다. 점토서판에 이어 초기의 책 형태를 지닌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관한 비화이다. 이집트의 자부심이기도 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경쟁국인 페르가몬에 새로 생긴 도서관 때문에 명성에 도전을 받게 되자, 파피루스를 생산하던 이집트는 결국 페르가몬에 수출을 거부하게 된다. 페르가몬은 어쩔 수 없이 파피루스를 대용할 만한 매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해야만 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송아지, 양, 염소 등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양피지이다.   “드디어 끝났구나! 녹초가 된 내 손도 이제 쉴 수 있겠네.” 중세시대, 어느 필경사의 후기시대의 현명한 필경사여, 그대 이름 영원하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창조되기 전까지 필경사는 책과 도서관이 번성하는데 무엇보다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 노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필경사들은 필사가 끝낸 뒤 책의 마지막 여백에 자신의 고됨을 토로하는 구절을 남기기도 했다. 필경사의 필사 임무는 특히 까다로웠기 때문에 무엇보다 세심함과 긴 시간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을 요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스테디셀러로도 언급되는 성경은 필사하는 데 무려 1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것은 물론이고 잡담도 허용되지 않은 필사실 안에서 필경사들은 온 정신을 집중해 필사에만 매달려야 했다. 나아가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필사실은 침묵으로 그들의 신앙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는 펜이 긁히는 소리, 간헐적으로 들리는 기침 소기 혹은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뿐이었다. 저녁 종이 울리면 필경사들은 나가서 식사와 기도를 하고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으며, 동 트기 전에 아침 종이 울리면 일어나서 다시 필사실로 가 조용한 필사 작업을 시작했다.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 같은 일과를 보내야 했던 필경사들의 모습은 흡사 현대의 출판사 편집자의 일상과도 유사하다. 물론 당시에는 양피지 낱장을 신중하게 자르는 일에서부터 페이지를 제본하고, 표지를 씌우는 작업 등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필경사의 손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편집, 인쇄, 제본 등이 분업화 된 요즘의 책 공정과는 차이가 있지만 책이라는 하나의 물성이 사람의 정신과 육체의 장인 정신에 가까운 노력으로 비로소 독자에게 제공된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정직한 친구여, 이 책을 훔치지 말라.그랬다간 교수형을 면치 못하리라.네가 죽으면 신께서 물으시겠지.네가 훔친 그 책은 어디에 있지?”책 도둑을 향한 저주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두 독서광의 기이한 운명적 조우를 유머러스하게 펼쳐놓은 클라스 후이징의 장편소설 《책벌레》(1994)에는 책을 향한 지독한 애정으로 도둑을 일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은 비단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은 고대부터 책 도둑은 빈번하게 들끓었고, 전쟁을 통한 최고의 전리품이 책일 정도로 책에 대한 소유욕은 과거부터 그 정도가 심상치 않았다. 책의 저주는 도서관이 등장하던 시기부터 시작되었는데, 도서관 사서는 책 도둑을 살인자 혹은 신성 모독자와 다름없이 취급했으며 그들에게 최악의 벌이 내려지기를 원했다. 책 도둑으로 골머리를 앓던 중세 시대에는 책 도둑을 향한 저주를 곳곳에 붙여놓았으며, 도서관에서는 가장 많이 이용되는 책들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책을 책상과 독서대에 묶어 놓기도 했다. 책의 저주는 대체로 필경사들이 책의 마지막 장에 첨가했는데, 누구든 책을 훔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파멸 또는 오랜 육체적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고대 도서관 사서들은 책 도둑과 문화 예술의 파괴자에 대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신들의 격노가 임하기를 기원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파피루스를 재사용하기 위해 원래의 내용을 지우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기도 했다. “나부와 마르두크의 신의 이름으로, 내용을 지우지 말라!” 고대의 한 글에서는 빌린 책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빌려주는 경우, 처참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저주하기도 했다.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사람에게는 바빌론의 모든 신이 저주를 내릴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도서관을 보호하기 위해 유명한 저주를 내리기도 했는데 “이 책을 훔치거나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는 자의 손에서 책은 뱀으로 변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리라. 그의 몸은 마비되고 손발은 모두 잘려 나가리라. 은총을 갈구하며 울부짖을지라도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서서히 쇠약해지리라. 책벌레가 그의 내장을 갉아먹고 지옥의 불꽃이 그를 영원히 태워 버리리라.” 성경에도 역시 이러한 저주가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을 완성한 필경사는 그 내용을 변경하는 사람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끝을 맺었다. “이 책에 나오는 예언의 말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경고한다. 누구든 내용을 덧붙이는 자에게는 이 책에 쓰인 재앙이 임할 것이며, 누구든 이 예언서의 내용을 삭제하는 자에게는 삶의 열매가 제거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 안에 불타오르는 첫 번째 야망은 바로 좋은 책을 소유하는 것과 그런 책을 계속 늘려 가는 것이다. 해가 가면서 점점 불어나는 서고는 청년의 인생을 명예롭게 할 것이다. 책을 갖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다. 서고는 사치가 아니라 삶의 필수조건이다.”헨리 워드 비쳐대형 국립 도서관으로 탈바꿈 한 개인 서고들 아슈르바니팔의 서재가 최초의 도서관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각국에 우뚝 선 최고의 도서관들은 부를 지닌 애서가들의 개인 서고가 그 초석이었다.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귀족과 권세 있는 상인 계급 중 일부 애서가들은 장서를 모으기 위해 재산을 투자했다. 이탈리아의 주요 장서가 중 한 명인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은 자신이 살던 우르비노에 값비싼 양피지에 글을 쓰는 필경사를 수십 명이나 고용했으며, 세밀화가에게 채색을 맡기고 후에 은으로 장식된 진홍색 표지로 제본을 해서 서가에 꽂았다. 피렌체의 엄청난 부자였던 메디치 가 사람들 역시 채색 사본에 깊은 애정을 보였는데, 양피지에 인쇄된 귀중한 책들을 구입한 후 피렌체에서 가장 솜씨 좋은 세밀화가에게 채색을 맡겼다. 이 두 인물 모두 당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도서관 설립자였다. 코시모는 피렌체에 있는 자신의 영지와 산마르코 인근 수도원에 도서관을 건립했는데 이 도서관이 이탈리아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 되었다. 그 토대가 바로 피렌체에 있는 로렌티안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개인 서고의 기증뿐만 아니라 부를 축적한 애서가들은 공공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내놓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실업가이자 자선가인 앤드루 카네기가 있다. 앤드루 카네기는 자신이 어린 시절 제임스 앤더슨 대령의 개인 서고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을 계기로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후에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베풀고자 다짐하게 된다. “재산을 늘리려고 애쓰기보다는 매년 흑자를 자선 목적에 사용하고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사업을 영원히 하지 않겠다”라는 부에 대한 그의 신조처럼, 36년 후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카네기는 도서관과 시민센터 건립을 위해 평생 재산의 90퍼센트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했다. 도서관 건립은 ‘인류의 진보’에 대한 그의 비전이기도 했으며, 도서관과 같은 문화 기관이 노동자 계층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확신한 그의 실천력이 오늘날 많은 서민층들에게로 지식이 확장되는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한 국가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보고, 현재를 보려면 시장에 가보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보라”인류가 창조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인 도서관문자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도서관은 역사를 거듭하면서 수많은 애서가로부터 건축되고 탈바꿈되어 오늘날까지 쉬지 않고 번성하고 있다. 책을 향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갈망은 도서관이라는 인류가 창조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점토 서판과 파피루스 그리고 양피지에 이어 최초의 종이 표지 책이라 할 수 있는 중세 시대의 저렴한 소책자까지 제본 방식 역시 책에 대한 열정으로 선보인 결과물이다. 인류의 문명에 발전을 가하는 이러한 책들을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읽을 수 있는 방법 역시 책에 대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욕구로부터 고안된 것이다. 광범위한 도서들을 관리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서지학을 연구했으며, 도서관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멜빌 듀이의 혁신적인 십진법 또한 빛을 볼 수 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집에서 5분 거리의 동네 도서관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도서관에 얽힌 전 세계의 방대한 역사는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바구니와 도기 항아리에 보관되던 점토 서판이 한 국가의 명성을 높여주는 건축물로 그 공간과 범위가 확대된 것을 살펴볼 때, 도서관의 탄생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명망 높은 하나의 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비롯한 인쇄술의 발달, 인문학의 시대로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번창한 학회(아카데미)와 서점의 번성, 지금도 이어지는 도서 전시회의 개최, 현재의 타이포그라피와 캘리그라피가 있게 해준 중세 시대 서체 예술의 발달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시대의 얽힘이 있어야 했다. 책에 대한 확고한 취향과 애정을 가진 이들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각국의 도서관이 여실히 증명해내는 셈이다. 도서관은 문명이 거듭되고 역사가 바뀌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단 하나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는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또 다른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천이 된다. 문자가 시작된 고대부터 전자책이 발달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과 책을 위한 장소는 앞으로도 사람들을 열광시킬 것이다. 도서관은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 “천국은 도서관과 같으리라”가스통 바슐라르“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나는 책부터 산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 음식과 옷을 산다.” 에라스뮈스“어떤 책은 음미해야 하고, 어떤 책은 꿀꺽 삼켜야 하며, 어떤 책은 꼭꼭 씹어서 소화시켜야 한다.”프랜시스 베이컨“책이 없으면 신은 침묵하고, 정의는 잠자며, 과학은 정체되고, 철학은 불구가 되며, 문학은 벙어리가 된다. 결국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긴다” A. 바르톨리니“책을 읽으라.” 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주었던 가르침 

  • 손뜨개 모티브 200가지(절판)
    손뜨개 모티브 200가지(절판)
    단뜨기와 원형뜨기 그리고 다양한 모티브를 연결하고 장식술을 만드는 방법
    저자
    쟌 이튼
    역자
    김수진
    정가 18,000원
    판매가 0원 (100% 할인)

    손뜨개를 처음 시작하세요?손뜨개로 아이 방을 꾸미고 싶으세요?나만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요? 전통적인 바둑판 무늬부터 아르데코 스타일의 기하학적 무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패턴과 짜임새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단뜨기와 원형뜨기 그리고 다양한 모티브를 연결하고 장식술을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뜨기법과 테크닉을 난이도에 따라 그림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이제 누구나 모티브를 이용한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코바늘과 대바늘로 뜨는 가장 실용적인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바로 모티브 뜨기. 모티브는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침대 커버를 비롯해 쿠션 커버, 무릎 담요 그리고 아프간 등을 만들 수 있는 활용도 높은 아이템입니다. 손뜨개의 가장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게다가 디자인 역시 너무도 무궁무진해서 어떠한 모티브들끼리 엮느냐에 따라 색다른 모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단순해 보이는 모티브들을 어떠한 실과 색으로 배합할 것인지, 어떠한 디자인으로 구성할 것인지 막상 시도해보려고 하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털실을 이용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온 저자 쟌 이튼은 코바늘뜨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바늘 잡는 법, 실 연결하는 법, 뜨개법 등을 시작으로 색을 배합하는 법, 저자가 개발한 모티브 200가지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그 모티브들을 연결하는 법 등 다양한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저자 쟌 이튼은 오랫동안 수집한 코바늘 패턴과 관련 잡지들을 분석하고 영감을 얻어 수많은 노력 끝에 전통 디자인을 재구성한 다양한 모티브 패턴을 고안해냈습니다. 저자의 이러한 열정은 200가지 모티브 디자인을 통해 면면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중적인 취미 실용 생활의 하나로 자리 잡힌 손뜨개를 버스나 기차, 비행기로 이동 중에도 손쉽게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잠자기 전 텔레비전을 청취하면서도,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코바늘뜨기를 하며 하루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특히나 시간과 장소의 구애가 없는 모티브 뜨기라면 말이지요. 틈날 때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백분 활용해 나만의 공간을 독특하게 꾸며보세요. 낡고 우중충했던 침대 커버를, 밋밋했던 소파를, 모티브를 활용해 아늑하고 멋지게 가꾸어보세요. 그 어떤 인테리어보다도 더 훌륭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손뜨개는 겨울에만 한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손뜨개 모티브 200가지》로 사계절 내내 집안 분위기를 가꿀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이 좋아요● 아이템에 따른 모티브를 제안합니다.   커다란 침대 커버부터 작은 쿠션 커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또한 아프간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방법까지도 실었습니다.● 다양한 모티브를 연결하고 장식술을 만드는 방법까지 설명합니다.200가지가 넘는 모티브는 물론이거니와 모티브를 완성하는 가장자리 뜨개법을 다양하게 실었습니다. 게다가 독특한 질감을 표현하는 뜨개법부터 실을 고르는 방법과 실의 양 계산법까지 다뤄 독자들의 편의를 더했습니다.  ● 70가지가 넘는 다양한 색상들을 소개합니다.친절하게 표기된 색상표를 통해 나만의 색을 배합할 수 있습니다. 컬러팔레트와 색 이론을 통해 어울리는 색상을 배합하는 방법과 창의적인 색 배합이 무엇인지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