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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
저자 이리스 뮐러 베스테르만 역자 홍주연 발행일 2013-04-30
정가 33,000원
판매가 31,350원 (5% 할인, 적립금 1,6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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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200*253(양장)
페이지 376쪽
ISBN 978-89-7084-496-1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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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소개

에드바르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그의 '시각적 자서전' 

주요내용

에드바르 뭉크처럼 자신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솔직하게 드러낸 화가도 드물다. 유전된 광기, 불행한 가족사, 사랑의 좌절 끝에 스스로를 세상에서 단절시킨 후에야 평안을 찾은 그에게 그림은 매순간의 정신 상태를 포착하고 이해하기 위한 스냅샷이자, 심연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절벽 위 한줄기 길이었다. 

뭉크는 화가가 된 1880년대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화 70여 점과 판화 20여 점, 수채화와 드로잉 100여 점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러한 자기 분석을 통해 그는 렘브란트, 고야, 반 고흐 같은 위대한 자화상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게 되었다. 자화상에서 뭉크는 죽음, 사랑, 섹슈얼리티, 삶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뿐만 아니라 국외자局外者(그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명해진 한참 후에야 고국 노르웨이에서 인정받았다)로서 자신의 위치를 고찰했으며, 이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와 고독에도 공명한다. 우리는 그의 자화상을 통해 한 남자의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를 엿볼 수 있으며, 자연주의에서 상징주의와 표현주의로 나아가는 예술 사조의 변화도 목격할 수 있다.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이 책은 뭉크의 화집이자 그가 평생 남긴 행적 및 기록들을 예리하게 분석한 평전이다. 또한, <절규>의 황혼녘에서 마지막 자화상 <새벽 2시 15분>의 여명에 이르는 그림들을 통해 뭉크의 내면을 꼼꼼히 읽어낸 미술비평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뭉크의 삶에 존재한 모든 굴곡을 추적하면서, 이 그림들이 그의 내밀한 경험들을 얼마나 강렬하게 포착해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좀처럼 접하지 못한 중년 이후의 작품들을 다수 포함시켰으며, 또한 화가가 자신을 보는 시각을 깊이 있게 탐구하기 위해 자화상이 아니라 해도 주요 작품들은 빼놓지 않았다.


"나의 예술은 가라앉는 배에서 무전 전신기사가 보내는 경고 전신과도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불안이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삶에 대한 두려움과 병이 없었다면 나는 키를 잃은 배와도 같았을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는 1863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5살 때 결핵으로 사망했고, 남매 중 가장 가까웠던 누나 소피에 또한 그가 14살 때 결핵으로 죽었다. 목사의 아들이었던(뭉크Munch는 수도사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매우 엄하게 키웠고, 죽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로 겁을 주기도 했다. 남매들 중 결혼을 한 사람은 남동생 안드레아스뿐이었으나 몇 달 후에 죽었으며, 여동생 하나는 젊은 나이에 정신병 진단을 받았다. 1889년에는 아버지마저 작고하는데, 아버지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죄책감 때문인지 더욱 절망에 빠진 뭉크는 자살을 고려하기도 했다. 

 

<절망>은 뭉크가 해질녘에 산책을 하던 중 경험한 불안감을 최초로 표현한 작품이다. 모자를 쓴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있고 다른 두 사람은 다리 위를 걸어간다. 뒤에는 언덕으로 둘러싸인 피오르가 보인다. 해가 지면서 강렬한 붉은색이 풍경을 물들이고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심한 피로감에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불타는 듯한 구름이 짙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피 묻은 검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으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뭉크의 가장 유명한 그림 <절규>는 이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인물은 이제 관람자들을 향해 돌아서 있으며 벌어진 입과 텅 빈 눈을 가진 무성의 존재이다. 그는 자신이 지르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다.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그림 속 공간은 불안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며, 과감하게 단순화된 인물과 배경 묘사는 관람자를 화가의 주관적 감정 상태에 집중시킨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뭉크의 또 다른 유명한 그림 <마돈나>는 보통 임신한 여성으로 해석된다. 같은 주제로 제작한 판화의 테두리에는 태아와 정자가 그려져 있는데, 여성의 본질은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 그림은 <담배를 든 자화상>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다. 자화상에는 머리와 담배를 든 손 사이에, <마돈나>에는 머리와 벌거벗은 몸 사이에 긴장감이 존재한다. 여성이 머리를 몸에 바침으로써 창조성을 지닌다면, (뭉크를 비롯한) 남성의 창조성은 머리와 손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다. 

한편, 수채화 <고통의 꽃>은 뭉크와 닮은 얼굴의 남자가 맨몸으로 시커먼 흙 속에서 나오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의 심장 근처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와 흙으로 스며든다. 화가는 왼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오른손은 위로 올려 고통으로 젖혀진 머리를 붙들고 있다. 눈 부분이 눈가리개처럼 까맣게 칠해진 화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가장 깊은 내면의 감정인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의 오른쪽 팔꿈치는 피가 땅에 스며드는 지점에서 솟아오른 ‘고통의 꽃’을 가리키고, 왼쪽 팔꿈치는 아래쪽 흙을 향해 있다. 예술의 원천은 화가의 심장에서 솟는 피다. 하지만 꽃은 피에서 바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고통이 예술로 바뀌는 것은 오로지 ‘흙과의 연결’, 즉 실제 삶과 연결된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고통의 꽃은 뭉크가 예술가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의 바탕이었다. 이 그림 속 남자는 <마돈나>의 여성과 자세가 비슷하다. 여성이 고통 속에 아이를 낳듯이 예술가도 고통 속에서 예술을 창조한다. 이처럼 여성의 생명 창조와 남성의 예술 창조를 대등하게 본 뭉크의 시각은, 그가 자신의 그림을 ‘고통 속에 태어난 자식들’로 표현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길은 나를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가 있는 절벽 가장자리로 이끌었다. 

가끔은 그 길로부터 도망쳐 사람들 사이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매번 다시 절벽 위로 돌아와야 했다. 

그것이 심연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걸어야 할 나의 길이다."


1898년에 뭉크는 툴라 라르센을 만났다. 그는 이 아름답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창작에 있어서도 왕성한 시기를 맞아 오랫동안 구상해왔던 연작 '생의 프리즈'를 완성한다. 뭉크가 툴라를 여성성의 전형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그가 쓴 편지에 잘 드러난다. 


나는 마치 수정처럼 변화하는 수천 가지 표정을 가진 여러 여자들을 봐왔어. 

하지만 오직 세 가지 강렬한 표정만을 분명하게 지닌 여자는 만나본 적이 없어. (...) 

당신은 가장 깊은 슬픔의 표정을 갖고 있어. (...) 

마치 옛날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성화 속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처럼 말이지. 

그리고 당신이 행복할 때-나는 그토록 빛나는 기쁨의 표정을 본 적이 없어. 

마치 당신 얼굴에 갑자기 햇빛이 쏟아지는 것 같아. 

그리고 당신이 가진 세 번째 얼굴, 이것은 나를 두렵게 만들어. 

그것은 운명의 얼굴, 스핑크스의 얼굴이야. 그 안에서 나는 여성의 위험한 특성을 발견하지.


이 편지는 뭉크가 ‘생의 프리즈’를 대표하는 <생의 춤>을 그리던 시절 쓴 것이다. 이 때문에 <생의 춤>에서 붉은 옷의 여성은 흔히 툴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여성은 뭉크의 첫사랑 밀리 타울로브일 것이다. 뭉크는 자신의 과거와 춤추고 있는 것이다. 툴라는 다른 두 여성, 왼쪽에서 꽃을 꺾으려 하는 흰 옷의 여성과 오른쪽에 서 있는 검은 옷의 여성으로 나타난다. 뭉크는 <생의 춤>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내 (진짜) 첫사랑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 

그녀는 사랑의 꽃을 꺾으려 하지만 꽃은 꺾이지 않는다. 

반대편에는 검은 옷을 입은 그녀가 슬픈 얼굴로 춤추는 커플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그녀와의 춤을 거절당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거절당한 채.


툴라는 결혼을 원했지만, 비극적 가족사와 자신의 정신병 유전이 두려웠던 뭉크는 자신에겐 예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회피하곤 했다. 툴라와의 격렬한 관계는 1902년에 비극적인 파국을 맞는다. 툴라와 다투던 뭉크가 자신의 왼손에 권총을 쏜 것이다. 툴라는 얼마 후 뭉크의 친구였던 다른 화가와 결혼했고, 뭉크는 그 후로도 십 년이 넘게 그림들을 통해 그녀와의 관계를 되새겼다. 


“나를 비난하지 마. 내가 삶을 살고 있지도,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슬퍼해줘. 

나는 그저 고통스러운 열망을 품고 창가에 앉아 

나를 둘러싼 끔찍하도록 시끄럽고 낯선 삶의 소란을 지켜볼 뿐이야.”


1908년에 뭉크는 신경쇠약을 일으켰고 다음 해 봄까지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술을 끊고 국가에서 훈장을 수여받아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그는 은둔하여 작업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에켈리에 농장을 구입한 뭉크는 여생을 그곳에서 홀로 살아갔다. 

이제 그의 그림은 강렬한 불안감보다는 차분한 우울함을 느끼게 하며, 붉은색보다 푸른색이나 초록색이 눈에 띈다. <자화상, 밤의 방랑자>에서 뭉크는 실내복 차림으로 한밤중에 에켈리의 휑한 방을 맴돈다. 그가 서 있는 베란다 문으로부터 내다본 풍경은 <별이 빛나는 밤>에 나타나 있다. 뭉크는 차가운 밤공기와 자신의 머리가 드리운 그림자에 자신의 고독을 투사한다. 지평선 멀리 도시의 불빛과 빛나는 별들은 광대한 공간으로 구도를 확대하면서 고독감을 더욱 증대시킨다. 

 

그러나 작은 행복의 순간들도 있었다. <개들과 함께 있는 자화상>에서 뭉크는 애완견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뭉크의 몸 앞쪽은 환한 햇빛을 받고 있어 그가 개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화가가 뻗은 손과 개들의 주둥이 사이 공간이 그림의 중심을 형성한다. 이 공간은 비어 있지만, 곧 화가의 손과 개들이 만나면서 채워질 것이다. 기대가 현실과 만나기 직전의 짧은 순간은 모든 가능성으로 충만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마법의 순간이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화가가 스스로 짊어진 고독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뭉크가 자신을 마지막으로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그린 <자화상, 보헤미안의 결혼식>에 대해서, 그의 모델 비르지트 프레스퇴는 이렇게 기록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뭉크가 자기를 만나러 와줄 수 있냐고 했다. 

그는 혼자 있었고, 전구도 장식도 달려 있지 않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만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는 내게 테이블에 놓인 과일을 권했다. 내가 손을 뻗어 사과를 집자 그가 말했다. 

'그렇게 앉아 있어, 그대로.' 그것이 <보헤미안의 결혼식>의 시작이었다. 

내가 가야 할 시간이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계속 있으려면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러지 않는 게 좋겠지. 

집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크리스마스이브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니까.'


그의 마지막 자화상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강박적이고 예리한 정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구 머리가 있는 자화상>에서 뭉크의 눈은 접시 위 물고기의 눈처럼 퀭하다. 뭉크는 평생 채식주의자였지만 노년에는 단백질 섭취를 위해 생선을 먹었다. 노르웨이에서 대구 머리는 진미로 통한다. 그러나 이 자화상에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기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뭉크는 나이프와 포크를 요리에 찔러 넣으려 하는 순간 물고기와 자신의 본질적 연결고리를 느낀다. 죽은 물고기의 머리는 뭉크를 자신의 죽음과 대면시킨다. 한편 정면에서 바라본 얼굴을 묘사한 자화상 습작은 말년의 <절규>라 할 만하다. 다만 <절규>가 삶의 불안을 그렸다면 이 습작은 죽음에의 불안을 그렸다는 것이 다르다. 공포에 사로잡혀 크게 뜬 그의 눈을 마주하며, 관람자도 자신 속의 두려움과 맞닥뜨리게 된다.


<자화상, 새벽 2시 15분>에서 화가는 거의 투명해 보이는 몸을 안락의자에서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단호하고 곧은 표정은 자신에게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자각을 보여준다. 주변의 공간은 녹아 사라져가며,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기다린다. 늙은 화가는 매혹과 공포에 사로잡혀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나는 갑작스럽게 혹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이 마지막을 경험하고 싶어.


여든한 살의 수명을 누렸던 뭉크는 1944년 1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뭉크는 인간을 탐구하기 위해 고갱처럼 타히티로 떠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내면에는 자신만의 타히티가 있다."

 

뭉크의 예술세계는 제임스 앙소르나 귀스타브 모로 같은 당시의 다른 상징주의 화가들보다 훨씬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다. 앙소르는 풍자화 전통에, 모로는 신화의 상징체계에 기대어 있지만 뭉크의 그림은 문화적 지식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끝난 뒤 북경 국립미술관에 최초로 전시된 서구 미술작품이 뭉크의 그림이었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1890년에서 1908년 사이 뭉크는 표현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1909년 귀국한 후 그는 유럽 미술의 흐름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는 큐비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추상 등에 관심이 없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뭉크의 후기 작품들이 ‘아방가르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은둔 이후로 죽기 전까지 그의 자화상들은 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감각적이었다. 이 그림들에는 뭉크의 기법적 숙련과 다양한 실험이 드러나 있다. 뭉크의 그림은 단번에 격정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갈등과 감정을 포착해내기 위해 여러 차례의 습작을 거쳐 세심하게 화면을 구성했다. 인물의 자세는 심리 상태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도록 선택되었다. 그들은 순수한 감정 자체를 굳혀낸 듯 정적이고도 극적인 모습으로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듯하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캔버스에 담아내야 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과감히 다른 모든 요소를 무시해버렸다. 그의 작품이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뭉크의 자화상은 한 회의주의자의 고백이자 역할극이다. 그러나 그의 성격적 모순은 시대의 분열을 반영한다. 이 그림들은 예술과 종교와 사회가 끊임없이 변하던 시기에 화가가 처한 현실에 대한 주관적 반응이었다. 소시민 사회에도 예술가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한 한 인간의 모습이 그의 자화상에 담겨 있다. 고독을 삶의 조건으로 선택하고 그 안에서 자아 정체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뭉크는 현대인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삶을 이해하려는 끝없는 열망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이 점이 뭉크의 자화상을 주관적인 고백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나는 미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내 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한다. 

나의 그림은 자발적인 고백이며,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도서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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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말


머리말


개인적 경험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얼굴 : 1880년대


새로운 미학을 향해 : 1890년대


국외자로서의 예술가 : 19세기 말-20세기 초


위기의 시기 : 1902-1908년


노르웨이로 돌아오다 : 1909-1921년


에켈리에서의 은둔 생활 : 1922-1944년


맺음말


각주


연표


도판목록


참고자료


인물 찾아보기


지은이 / 옮긴이

이리스 뮐러 베스테르만Iris Müller-Westermann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의 국제미술부 큐레이터이다. 

뭉크 전문가로서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고 여러 간행물에 글을 기고했다. 


홍주연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영상 번역가와 해외 프로그램 제작 PD로 일하면서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수백여 편의 번역과 검수 및 제작을 담당했다.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  《그래도 너의 길을 가라》,  《엄마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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