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경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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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시적인 강렬함에 이끌림

    마티스, <푸른 누드>, 1907, 92.1x140.4cm 1906년 가을에 마티스와 피카소는 아프리카 조각과 같은 원시적으로 보이는 형상들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갱의 추모 전시회에서 원시적인 목각과 도기 조각들을 비롯한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마티스의 <푸른 누드>는 전통적인 누드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처럼 거칠고 그로테스크한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마티스의 <푸른 누드>는 극단적인 왜곡과 유동적인 그림 공간, 강한 입체감은 그가 원시적 강렬함과 거칢을 아프리카 조각들에서 발견한 결과입니다.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 243.9x233.7cm<아비뇽의 아가씨들>은 피카소가 아프리카 조각과 만난 결과이기도 했지만, 마티스의 <푸른 누드>에 응수하는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마티스의 견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야말로 문명화되기 전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초자연의 숭배를 상징했으며, 퇴폐적인 서구와 참신한 대조였지요. 한편으로 아프리카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거나 주술 같은 불가사의하고 혐오스러운 의식과 풍습이 있는 미지의 대륙이기도 했습니다. ‘원시주의’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는 매력적인 동시에 혐오감을 주고, 아름다운 동시에 기괴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비뇽의 아가씨들>에서 피카소는 이러한 긴장을 강력하게 표현해낸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지독한 사랑

    우수에 젖은 표정과 긴 목의 초상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이하 모디)와 그의 영원한 사랑이자 예술의 영감이 되었던 뮤즈, 잔느 에뷔테른(Jeanne Hebuterne, 1898-1920이하 잔느). 잔느는 모디의 아내로 그동안 미술사에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모디에게 모델로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함께 작업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표출했던 화가 지망생이었습니다.*모디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저주받은 화가' 라는 뜻이기도 해요이탈리아 리브른느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선천적인 늑막염, 장티푸스, 폐렴 등으로 어려서부터 허약했습니다. 1913년경부터는 건강의 이유로 그가 좋아했던 조각을 하지 못하고 주위 아는 사람이나 창녀들을 모델로 주로 초상화와 누드를 그렸는데요, 특히 아프리카의 원시조각상에 영향을 받은 그는 긴 목의 애수와 관능적인 여인상의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15살의 나이에 이미 화가의 꿈을 지녔던 어린 잔느는 미술학교에 다니며 몽파르나스의 가난한 예술가들과 교우하고 때론 그들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잔느는 수업이 끝나면 카페 로통드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어느 날 깔끔한 코듀로이와 붉은 스카프를 두른 이탈리아 화가 모딜리아니를 우연히 마주하게 됩니다. 모딜리아니는 잘 생긴 외모에 교양과 매너가 있어서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으나, 너무 가난해서 빵을 사기 위해 헐값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술과 마약, 방탕한 생활에 의지해 현실에서 도피하는 예술가였습니다.1917년 봄, 조각가 Chana Orloff는 화가들의 모임에서 모딜리아니에게 잔느를 소개해줍니다.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 1919년, 캔버스에 유채, 66x47cm<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1917년, 캔버스 유채, 55×38cm1916년 몽파르나스에서의 가난했던 시절, 그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즈보로프스키는 그랑쇼미엘 8가에 있는 빌딩 꼭대기에 모디와 잔느의 작업실을 내어줍니다. 1917년부터 2년 동안 잔느는 수업이 끝나면 작업실에서 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키워갑니다. 어릴 때 부터 폐결핵을 앓던 모디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즈보로프스키의 권유로 둘은 니스의 해변으로 요양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둘은 부부로서 살았지만, 잔느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합법적인 예식을 치르지 못합니다. 14살 연상에 알콜중독에 마약복용, 결핵으로 몸까지 성하지 않은 가난한 무명화가에게 딸을 보내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겠죠. 하지만 잔느와 함께하는 동안 모딜리아니는 술도 줄였고, 마약도 끊게 되었습니다. 둘은 가난하지만 기쁨이 충만한 날들을 보내며 모딜리아니는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시기에 모딜리아니의 대표적인 초상화들이 가장 많이 탄생했고,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딸 잔느 모딜리아니가 태어난 것도 니스에서였으며, 목이 긴 여인으로 유명한 잔느의 초상화들을 제작한 곳도 니스였다고 합니다."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게요…"그러나 그들은 2년이 채 못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 했고, 병원에 실려간 모딜리아니는 입원 3일 후 사망합니다. 사인은 결핵성 뇌막염이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잔은 모딜리아니의 주검에 달라붙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그리고 근 이틀이 지난 1920년 1월 26일 새벽, 잔느는 가족과 함께 머물던 아파트 5층에서 창문에 몸을 던집니다. 22살의 그녀는 8개월 된 둘째 아이를 가진 상태였습니다.모딜리아니의 연인이기 전에 화가로서 잔느의 재능을 보여주는 자화상입니다. 그녀가 살아남아 계속 작품을 그렸다면 아마 뛰어난 화가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잔느는 자신의 재능도 삶도 모두 포기한 채 사랑하는 연인인 모딜리아니와 영원히 함께하기 위한 길을 택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앙드레 살몽은 잔느의 죽음에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편히 잠들라, 애처로운 잔느 에뷔테른이여.편히 잠들라, 당신의 죽은 아이를 요람에 넣어 흔들었을 애처로운 여인이여.편이 잠들라, 더 이상 헌신적일 수 없었던 여인이여.생 메다르 교구의 마리아 상과 닮았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죽은 아내여.편히 잠들라,  흙에 덮여가는 그 새하얀 은둔처에서.가난 속에서 죽었고, 죽은 후에 유명해진 모딜리아니와 영원한 사랑의 신화로 남은 잔느의 이야기는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 독특한 아이디어의 성냥 아트

    'LOVE'입체적으로 표현된 '사랑'이라는 단어가 새빨간 색과 어울려 더욱 강렬하게 느껴집니다.이 작품의 재료는 성냥입니다.'LOVE' 라는 한 단어를 위해 무려 2,500개의 성냥이 사용되었고 꼬박 24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붉은 성냥으로 표현한 사랑은...로맨스와 열정, 그리고 질투와 파괴를 상징합니다.흰 색 성냥을 끊김없이 연결하여 금색 하트에 도착하는 사람의 모습...불에 타면서 변하는 성냥의 색상을 이용한 매의 역동적인 모습...독특한 '성냥 아트'는 대만의 건축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Pei-San Ng 의 작품들입니다.그녀는 다양한 색상의 성냥으로 이미지를 표현하고 때로는 성냥에 불을 붙여 또 다른 의미를 창출합니다.​'Temptation' -> 'Burned' 화폐 단위인 달러를 성냥으로 표현한 이 작품이 Pei-San Ng 의 첫번째 성냥 아트입니다.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학교에서 건축 모델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나무 막대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시도하였습니다.하지만, 건축 모델용 스틱의 한계를 발견하고 대신 성냥을 선택하게 된 것이죠...붉은 성냥의 돈($)은 그 칼라만큼이나 강하게 사람들을 유혹(temptation)합니다.하지만, 작은 불꽃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타 버리고...결국 돈의 유혹은 눈깜짝할 사이에 까만 재로 변하고 맙니다. (burned)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은  'Temptation' 에서 'Burned' 로 변경되었습니다.Pei-San Ng 의 '성냥 아트' 에는 화려한 색상과 입체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성냥이라는 재료가 갖는 특성과 불이라는 현상의 의미, 또 그 이후의 변화...이러한 복합적 요소들이 그녀의 작품 전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신선한 아이디어로 깊은 의미를 표현하는 Pei-San Ng 의 '성냥 아트'를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 클림트의 삶과 작품세계

    예술적 재능만이 그를 구하다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금속 세공자이자 조각공이었다. 클림트의 아버지는 성실하게 일했지만 생활은 늘 빠듯했다. 생필품을 대기 힘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집세도 내지 못하는 때가 잦았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클림트의 예술적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빈의 응용미술학교에서 모자이크부터 회화, 프레스코화 등 여러 기법을 공부하며 예술적 감각을 뽐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동생 에른스트와 친구 프란츠 마치와 함께 천장화, 벽화 등 작업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예술가 컴퍼니’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으로 ‘예술가 컴퍼니’에 균열이 갈 즈음, 클림트의 마음에도 다른 욕구가 일었다. ‘예술가 컴퍼니’에서의 작업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상화된 인물들을 엄격한 규정에 따라 그리는 당시의 규칙을 내던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성’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몽환적인 그림 속 여성들의 모습은 당시 신랄한 비판을 일으켰지만, 오늘날에는 클림트만의 작품세계가 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클림트만의 그림, 여성   클림트가 그린 그림 속 여성들의 나체, 유혹적인 눈빛 등으로 인해 클림트와 여성들을 둘러싼 염문은 끊임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클림트의 생활과 그림 속 여성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밝혀진 바는 많지 않다. 클림트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 누이들과 함께 생활했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며, 사생활 보호를 원칙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클림트만의 사랑, 에밀리 플뢰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재단사인 에밀리 플뢰계는 클림트의 연인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클림트는 공식적으로 에밀리 플뢰계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내거나 ‘미디’라고 부르며 편지를 보내는 등 친밀한 사이임을 숨기지 않았다. 뇌졸중이 클림트를 덮쳤을 때도 클림트는 에밀리를 불러 유작을 정리하게 하고는 생을 마쳤다.    클림트의 주요 작품들 ​클림트의 <키스>클림트의 창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온 작품이다. 키스하는 두 남녀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계일 것으로 추측되고만 있다. 이러한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 그림은 연인의 농염하며 육체적인 사랑, 우주와 개인의 일치에 대한 알레고리로 평가받고 있다.        <금색 시기> 클림트가 그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하며 ‘금색 시기’의 정점을 이룬 그림이다. 사실주의적 표현과 추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의상 속에 그려진 삼각형 안 이집트 양식의 눈 같은 장식은 이국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색채에 축배를>이 그림 속 여성은 앞서 봤던 <금색 시기> 속 주인공과 동일 인물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로, 부유한 실업가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에밀리 플뢰게를 제외하고 클림트가 여러 번 초상을 그린 유일한 여인이다.    ​<아터 호수>클림트는 자연, 식물, 날씨를 좋아했다. 그가 여름 휴가 때 즐겨 가고, 특히 좋아했던 아터 호수는 여러 번 그렸다고 알려졌다. ​​ <비밀에 싸인 늪>    ​<아터 호숫가의 운터라흐>    ​​<산봉우리 위에 빛나는 하늘>클림트의 풍경화 중에서도 보기 드문 유형이다. 클림트는 일반적으로 원근법적 깊이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호수 가운데서 시점이 시작되는 이 그림에는 공간성이 표현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한국 출판계와 현대사를 품은 'KOREAN ART BOOK' with 한병화 대표

    우리의 것이지만 낯선 문화재 사진과 남의 것이지만 익숙한 영어 활자의 조합. ‘한국 미술의 진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KOREAN ART BOOK 시리즈’라고 한 마디로 말해버리기엔 책의 첫인상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낯선 대상과 익숙한 대상 대 낯설어야 할 대상과 익숙해야 할 대상 사이의 간극, 한국 미술의 진가를 한국에도 알려야 하는 현실, 그 와중에도 꿋꿋한 이 12권의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행히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든 사람, 바로 도서출판 예경의 한병화 대표이다. KOREAN ART BOOK 시리즈에 대해 물었는데, 한국의 현대사와 도서출판 예경의 역사를 들었다. 딴 이야기를 나눴다는 뜻이 아니다. KOREAN ART BOOK 시리즈에는 도서출판 예경, 한국의 출판계와 현대사가 담겨 있다는 의미다.  KOREAN ART BOOK 시리즈를 말하기 위해선 총 14권으로 구성된 《국보》전집을 이야기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KOREAN ART BOOK 시리즈는 《국보》의 문고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보》가 심상치 않다. 우선 4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 출판사를 정식 등록한 해에 국보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출판사의 목적이 《국보》를 위한 느낌마저 든다.​처음부터 ‘우리의 아름다움’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이야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한 책도 많고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뭐 아무 것도 없었어요. 문화재 보존은커녕 문화재에 관해 정리해 놓은 자료도 없었으니까……. 우리의 것을 책으로 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이 뜻을 알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일을 추진할 수 있었죠. 기본적으로 우리 문화의 장점을 중국문화의 아류로 여긴다든가, 혼란의 근대사를 지나면서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그에 앞서 체계적인 정리부터 필요했던 거고요.최순우·정양모·한병삼 전 국립박물관장, 안휘준 서울대 교수 등 총 43명의 국보편찬위원회가 힘을 모아 주었다. 틈틈이 기획회의를 하고, 때로는 한 잔 기울이면서《국보》를 구성하고 생각했다. 《동양서화기법대관》(전 12권), 《단원 김홍도 금강도첩》 등 우리 미술을 알리기 위한 책들도 틈틈이 냈다. 국보편찬위원회가 구성된 지 3년 여의 시간이 흐른 1983년, 기획된 14권 중 1차분으로 4권이 출간되었다.​책이 나온 것은 좋았지만,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어요. 출판사 운영이 힘들었거든요. 큰 위기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근데 사람이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때마침 일본의 다케쇼보(竹書房) 출판사 의 다카하시 전무로부터《국보》를 일본에 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일본 다케쇼보 출판사와의《국보》일본어판 계약은 한국 최초로 저작권을 수출한 사례였다. 우리 미술의 우수성, 이를 잘 담아낸 책의 가치가 드러나자 그 후의 작업들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1985년 도쿄의 데이코쿠 호텔에서 다케쇼보 출판사의 주최로 일본어판 《국보》 출간 기념회가 열리고, ‘일본 문화의 원류’라는 주제로 강연회도 열었다. 1990년 마침내 《국보》14권이 완간되었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은 증보판으로 정리해 출간했다. 그러한 가운데《국보》를 한 권으로 축약한 영문판 도서 《KOREAN ART TREASURE》도 출간했다.미국 에이브람(HARRY.Y.ABRAMS.INC) 출판사에서도《국보》를 출간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마 당시 우리나라가 88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는데, 그동안 이름도 몰랐던 우리나라에 대해 소개할 책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 뉴욕문화원 원장이랑 직접 미국에 있는 출판사를 찾아갔어요. 그쪽에서는 한 권만 내고 싶다, 우리는 14권을 다 출간해야 계약한다, 의견 차이가 있었죠.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그쪽 출판사 사장이 바뀌기도 하면서 우리 《국보》건도 흐지부지 되나 싶었고요. 그때 뉴욕문화원 원장이 아예 우리가 만들자고 하더군요. 우리가 직접 영문판으로 한 권으로 만들어서, 한인사회에도 공급하고 우리 문화도 알리고. 그렇게 나온 책이《KOREAN ART TREASURE》이예요. 나중에는 에이브람 출판사가 북미 판매권 독점, 그들 출판사 이름으로 낸다는 조건 하에 미국에서도 출간했어요.종이에 연대기를 써 가며 기억을 더듬는 모습은 요즘 시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 흐름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때 그만큼 중요한 일을 했고, 격변의 시기를 이겨낸 사람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KOREAN ART BOOK 시리즈가 만약 사람이라면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격변의 시기에도 노력하고, 뜻을 지키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실제로도 그렇다.  KOREAN ART BOOK 시리즈는 큰 흐름에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전집물의 시대가 가고 단행본 중심으로 변하면서, 우리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등의 단행본을 냈어요.《국보》나《KOREAN ART TREASURE》도 옛날 책이 되어버렸고요.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국보》를 집필한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국보》를 보며 공부한 학자들이 오히려 더 아쉬워했어요. 그러더니 결국 외국인들을 상대로, 유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볼 수 있게 책을 내자고 하더라고요. ‘간편하되 우리 문화의 큰 줄기를 이어가자’라고 뜻을 모았죠.앞서 KOREAN ART BOOK 시리즈를 간단히 ‘《국보》의 문고판’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아니다. KOREAN ART BOOK 시리즈를 만들 때 ‘우리의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국보》에는 없고, KOREAN ART BOOK 시리즈에는 있는 것이 있다. 바로《민화 I, II》이다. 민화는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실용화로, 한 때는 정통 회화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천시받기도 했다.민화는 그려진 시대도 그린 사람도 명확히 알 수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가장 토속적인 것이지요. 주제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도 있고,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요. ‘우리’를 이해하는 데 민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민화 책을 만들었지요. 아마 KOREAN ART BOOK 시리즈 중에서 민화가 제일 잘 판매되고 있어요.​잠깐의 인터뷰 시간 동안 계속 머릿속을 맴돈 것은 ‘의기투합’이라는 단어였다. 《국보》를 위해서, 《KOREAN ART TREASURE》를 위해서, KOREAN ART BOOK 시리즈를 위해서, 우리의 미술을 알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책들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더 멀리가보면 우리 것을 이어와 준 이 역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역사가 지속되는 한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멀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도 의기투합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길에 함께 할 사람이 당신이길 기대해 본다. 

  • 편지 구절로 살펴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삶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년나는 그림을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나이 27세. 적지 않은 나이에 화가가 되겠다고 붓을 들었다. 개신교 목사의 여섯 아이 중 장남으로 태어나, 가난한 자에게 설교하며 사는 것이 하늘이 내려준 자신의 일이라 믿어왔던 그였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심과 보여주기 식 신앙심이 따로 있는 것이라면, 진정한 신앙심을 실천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면, 설교하는 일 따위 안 하느니만 못했다. 대신 그림으로써 가난한 자들 곁에 있겠다는 마음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설교를 하며 만난 가난한 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결국에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그림을 찾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삶을 살아내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벌써 늦은 시간이지만 테오 네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너는 여기에 없는데 난 네가 필요해.고흐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거의 20년 동안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에게 테오는 ‘인생이라는 여행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늘 불안했던 고흐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탱해준 것은 동생 테오와 자신은 ‘우리’라는 강한 결속력, 믿음이었다. 영리하면서 혁신적인 태도를 지닌 미술 중개상이었던 테오는 젊은 화가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고흐와 세상을 연결해주었으며, 고흐의 작품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테오에게도 고흐는 인생 대부분을 차지한 사람이라, 그가 세상을 떠날 때 테오의 충격은 컸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형의 회고전을 기획하던 그는 한순간 모든 의욕을 잃고, 고흐가 죽은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은 때 형을 따랐다.<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색채는 그 자체로 무언가를 표현한다. 색채 없이 표현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색채를 사용해야 한다. 아름다운 것, 진정 아름다운 것은 옳은 것이기도 하다.화가로서 고흐는 처음부터 색채에 강하게 끌렸다. 그 어떤 도구보다 화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믿었기 때문이다. 색채야말로 감각의 도구이며 주관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타인과 그 내용을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라고 믿었다. 일본 판화의 이론을 오랫동안 고심했고, 파리로 옮겨온 후 인상주의와 점묘주의 화가들의 과학적인 습작을 접하는 등 고흐 자신이 직접 겪고 깨달은 결과였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해석을 통해 표현하는 것, 그래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긍정적인 연관성을 확립하는 것, 색채를 통한 그림으로 고흐가 이루고자 하는 바였다. <별이 빛나는 밤>, 1889년…내 변함없는 소원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는 것이란다. 나는 색채와 구성에 의한 새로운 미술, 예술적 삶에 의한 새로운 미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믿고 있어. 그렇게 믿고 그림을 그린다면, 우리가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다.고흐는 젊었을 때부터 우울증, 공황장애, 신경증, 정서 불안 등을 앓았다. 자신의 귀마저 잘라버릴 정도로 불안정했던 그의 심리를 많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설상가상으로 언제 발작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고흐를 정신병동으로, 고립으로 이끌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는 다르게 고흐가 진정 원했던 것은 ‘함께’하는 그림이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 노력이 거절당하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지만 종국에는 ‘새 시대를 이끌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짐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다짐은 모두가 알다시피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종종 내가 부자라고 생각한단다. 돈을 많이 가진 건 아니지만 나는 부자야. 왜냐하면 내 작품 속에서 나는 내가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을 찾았기 때문이지.예술계에 편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의 삶은 외로웠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자신만의 기법, 삶에 관한 태도 등으로 인해 반 고흐는 독특한 예술가로 보일 뿐이었다. 살아생전 무시를 당했던 반 고흐는 세상을 떠난 후에야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그에 관한 출판물이 쏟아졌고, 그의 일생은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작품과 삶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바, 반 고흐는 많은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부자였을지도. 

  • [세계 속 작은 박물관] 어디까지 가 봤니? 남유럽편

    남유럽은 유럽 남부의 알프스 산맥 이남부터 피레네 산맥 서쪽까지의 지역을 말합니다. 대체적으로 날씨가 맑고 태양이 빛나고 지중해성의 부드럽고 따뜻한 기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에 비해서 물가가 저렴하고 공기가 맑아 여행지로도 한번쯤 꼭 고민해보게 된다는 곳이지요. 에스파냐,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모나코 등의 나라가 속해 있는데, 유럽 문화의 발상지인 곳들이 많아 각각의 나라 자체가 박물관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이런 곳에 있는 작은 박물관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피에트레 두레 공방 박물관Museo dell’Opificio delle Pietre Durre, Florence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피에트레 두레 공방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술 복원소로 유명합니다. 이 공방은 자체적으로 스쿠올라 디 알타 포르마지오네Scuola di Alta Formazione라는 학교를 운영하고, 학회를 여는 등 미술품 복원과 연구, 이를 위한 후학 양성에도 힘 쓰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이곳이 정확히 무엇을 복원하는 공간인지 궁금하시죠? 태피스트리, 회화 작품, 벽화 등 많은 작품들을 복원하지만 그중에서 박물관을 통해 주로 볼 수 있는 것은 피에트레 두레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입니다. 피에트레 두레 기법은 '피렌체 모자이크'라고도 알려져 있는데요, 갖가지 색을 지닌 원석을 특정 패턴으로 얇게 자르고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금, 은, 보석, 뼈, 자개 등을 박아 넣는 공예 기법입니다. 이 기법을 사용한 갖가지 물품을 피에트레 두레 공방 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피에트레 두레 공방 외관이 박물관의 기원은 14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렌초 데 메디치라는 사람은 붉은 이집트반암을 모았는데, 거기에 왕의 위엄과 황제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고 하네요. 그 사람의 후손으로 학식과 별난 취미를 겸비한 괴짜인 페르디난드 형제가 바로 이 공방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작고 똑같은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고대 로마의 기법을 토대로, 대리석이나 타일, 돌을 다양한 형태로 자른 뒤 이를 짜맞춰 문양을 완성하는 모자이크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테이블 상판, 보석함, 벽화 등에 사용되는데 준보석의 가치를 지닌 만큼 보통 물건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요. 피에트레 두레 공방 박물관 내 모습과 복원 작업 모습-------------------------------------------------------------​빌라 산 미켈레Villa San Michele, Anacapri이탈리아 소렌토에서 배를 타고 삼십 분,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카프리 섬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부터 파도에 의해 생긴 해식 동굴인 '푸른 동굴'이 유명하고요, 다양한 유물과 예술 작품이 있는 빌라 산 미켈레도 있습니다. 스웨덴의 의사였던 악셀 문테가 과거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저택이 있던 자리를 구입해 이곳을 지었습니다. 침실, 식당, 스튜디오, 정원 등의 공간 구분이 있는 것을 보며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지만, 평범한 곳은 아닙니다. 곳곳에 여러 유물과 작품들도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 박물관의 성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문테의 취향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빌라 산 미켈레 전경과 정원, 카페, 성곽 등 내외부 모습 악셀 문테는 살아 생전 이 집을 어떻게 짓고, 유물과 작품들을 어떻게 수집하게 되었는지 등 자신의 인생에 관한 책을 펴 냈습니다. 1929년에 출간된 《산 미켈레 이야기》라는 이 책은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당시 약 40개 언어로 번역되어 2천5백만 권이나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절판 상태입니다. 작품 수집과 관련된 내용들도 많은데, 많은 내용들이 사실과는 달라서 이 책을 회고록으로 봐야 할지 소설로 봐야 할지 우스개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빌라 산 미켈레 내 작품들스핑크스(위 왼쪽)와 메두사의 머리(아래 오른쪽)와 작품들-------------------------------------------------------------​프라도 미술관The Prado, Madrid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세계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우수하고 유명한 작품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지요. 12세기부터 19세기의 유럽 작품들을 중심으로 5천 여점의 소묘, 2천 여점의 판화 등을 보유하고 있고, 회화는 약 7천 8백 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언제 다보냐고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중 1천 3백 점 정도만 전시되고 있으니까요. 미술관 자체는 1819년에 개관하여 스페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프라도 미술관 전경프라도 미술관 내 주요 작품들\히에로니무스 보스, <건초 수레>, 1500년경​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 쾌락의 정원>, 1470년경  프란시스코 고야, <옷 입은 마하>, <옷 벗은 마하>, 1800-03년경​프라도 미술관 내 고야의 '검은 그림(pinturas negras, 1820-23)' 연작  <환상><호기심꾼들>(입을 비죽이며 웃는 두 노파), <두 노인>, <글을 읽는 남자들><마녀들의 모임>(위), <순례자들의 행렬>(아래)<우아한 옷을 입은 평민 출신 여인>(레오카디아)무제, 소위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실연 박물관The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Zagreb발칸 반도 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 그곳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자그레브에 실연 박물관이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그 끝은 슬프기 마련일텐데, 결별은 슬프지만 이별은 평화로울 수 있나 봅니다. 실제 연인이었던 올린카 비스티카와 드라젠 그루비시치는 이별을 맞이하면서 자신들의 물건들도 나누기 시작했씁니다. 둘 중 한 명에게만 속할 수 없는 물건, 자신의 것이지만 더 이상은 지니고 있지 않고 싶은 물건들을 모았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헤어진 연인들의 물건들도 기증 받아 이동 전시회를 열었고, 마침내 자그레브에 이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전시물들의 모습은 평범하지만 세계 각국의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실연 박물관 내부 모습2016년에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이 전시가 열렸습니다. 총 82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과 함께 물건을 기증했습니다. 이 전시의 내용은 책으로도 묶여 출간되었습니다. 이 기증품들은 전시가 끝나고 자그레브의 실연 박물관에 영구 기증되었고 하네요.실연 박물관 내 전시물 

  • [세계 속 작은 박물관] 어디까지 가 봤니? 북유럽편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지, 바로 북유럽입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문양들,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들 때문에 여행 욕구를 뿜뿜 일으키죠. 북유럽의 분위기를 곁에서 조금이나마 느끼기 위해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나 디자인이 유행하는가 하면, 북유럽의 복지 환경이나 문화생활 환경 등에서 비롯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고요. 여러모로 가고 싶은 곳이지만 멀기도 멀고, 물가도 비싸서 쉽게 갈 수 없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그만큼 한 번 가면 본전 이상은 뽑고 와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본전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곳, 북유럽 국가의 작은 박물관을 소개합니다.-------------------------------------------------------------- 토르발센 미술관Thorvaldsens museum, Copenhagen토르발센 미술관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덴마크 최초의 박물관으로. 1848년 개관했습니다. 박물관 건물은 덴마크 조각가인 토르발센의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특별히 지어졌습니다. 토르발센의 친구이자 건축가인 미카엘 고트리브 빈데스뵐이 건축했는데요, 빈더스뵐이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본 화려한 장식에 영감을 프레스코화에 담아 건물을 지었습니다. 빛과 어울려 박물관 내부의 작품들이 돋보이거나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는 등 생동감이 넘치는 미술관이라고 합니다.토르발센 미술관 내외부 모습박물관 내부의 작품은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센의 작품입니다.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이자 신고전주의 대표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교황, 나폴레옹, 유럽 왕실의 많은 예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토르발센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어린 나이에 덴마크 왕립 미술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여러 상을 휩쓸고, 장학생이 되어 아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나 40년 이상을 그곳에 머무르며 작품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흔적이 바로 토르발센 미술관에 모여 있는 것이지요. 토르발센 미술관에 있는 토르발센 초상화들(제작연도 왼쪽부터 1810, 1815, 1820, 1833, 1839, 1842, 작품별 화가는 상이) 토르발센 미술관 내 주요 작품들  가니메데스(위 왼쪽) | 헤르메스(위 가운데) | 황금 양털을 손에 넣은 이아손(위 오른쪽) | 프리드리히 네를리의 작픔 <대리석을 끄는 황소들> | 막시밀리안 1세(아래 오른쪽)--------------------------------------------------------------아이놀라Ainola, Jarvenpaa'휘바! 휘바!' 핀란드를 떠올리면 이 단어가 먼저 떠오르네요. 예전에 무슨 광고에 이 단어가 나왔었는데, 무슨 광고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요, 핀란드어로 '잘했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아이놀라는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40km 떨어져 있는 예르벤페, 그곳의 호수와 숲, 자작나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핀란드의 작곡가인 장 시벨리우스가 살던 집으로, 그의 아내 아이노의 이름을 따 아이놀라라고 이름지은 곳입니다. 이 집에서 시벨리우스는 그의 주요 작품을 대부분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단 하나의 음표도 그리지 않고, 집안에 악기 소리가 나지 않도록 딸들에게 주의를 주는 등 침묵으로 가득 채운 곳이기도 합니다.아이놀라 외관시벨리우스는 1903년 산책하기 좋은 환경과 백조와 거위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이곳의 땅을 구입했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건축가인 라르스 손크가 이 집을 지었고, 시벨리우스는 삶이 끝날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이 집에서 지냈습니다. 현재 아이놀라 박물관 내부는 시벨리우스가 그의 가족들과 살던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휴식을 취하고, 바라보고 거닐었던 그곳에서 우리도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놀라 내부 모습--------------------------------------------------------------아바 박물관ABBA: The Museum, Stockholm2013년 5월 7일 스웨덴의 스톡홀롬에 아바 박물관이 개장했습니다. 호주, 유럽 등 전 세계를 돌며 이동식으로 선보였던 아바 박물관이 스톡홀롬에 정착한 것이지요. 무대 의상이나 아바 멤버들의 소장품, 음반을 녹음하던 스튜디오와 분장실을 재구성한 공간, 영상 및 기록물로 된 아바에 관한 자료들을 구경하고,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바 노래를 부르거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등 보는 재미, 노는 재미가 있는 곳이라 아바를 잘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 아바 박물관 외관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만 아바(ABBA)는 1972년부터 1982년까지 활동한 스웨덴의 대표 4인조 혼성 팝 그룹입니다. ABBA라는 이름은 멤버들의 이름-아그네사 팰트스코그Agnetha Faltskog, 비요른 울바에우스Bjorn Ulvaeus, 베니 앤더슨Benny Andersson, 애니프리드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첫 글자만 따서 부른 것이라고 하네요. 아바는 1974년 <워터루(Waterloo)>라는 곡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고, 1977년에 발표한 4집 앨범 'Arrival'의 수록곡 <댄싱퀸(Dancing Queen)>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전설적인 그룹이 되었지요. 이후 많은 곡들이 아직도 사랑받고 있고 아바의 노래 24곡을 사용한 뮤지컬 <맘마미아>가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역사가 모인 아바 박물관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참, 아바 멤버들만 번호를 알고 있는 전화기가 박물관 내부에 있다고 합니다. 그 전화기의 벨이 울리면 꼭 받으셔서 아바 멤버와 통화도 해보세요.​  

  • [세계 속 박물관] 어디까지 가 봤니? 프랑스편

    ​'이야기 자판기’를 아시나요? 말 그대로 ‘이야기’를 판매하는 자판기입니다. 문프랑스의 스타트업 업체가 개발했다고 하는군요. 스마트폰 사용이 증가하면서 문학이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되었다고 하네요. 예술의 나라,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발상이겠죠? 이런 곳에 있는 작은 박물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프랑스와 이웃한 벨기에의 작은 박물관도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 로댕 미술관Musee Rodin, Paris로댕 미술관은 루브르, 베르사이유, 오르세이유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미술관이라고 합니다. 명실상부 프랑스의 주요 박물관이죠. 로댕 미술관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진 저택인데요, 로댕이 이 건물을 매입해 살다가 나라에 자신의 작품과 함께 이곳을 기증했다고 하는군요. 즉, 이곳에 가면 로댕의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상인 <생각하는 사람>은 미술관의 정원에 있고, 내부에서는 작품들 외에도 로댕이 사용하던 의자, 소파, 그의 수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네요.로댕 미술관 외관로댕 미술관 안팎에 있는 작품들--------------------------------------------------------​플랑드르필즈 박물관In Flanders Fields Museum, Ypres플랑드르필즈 박물관은 벨기에의 예페르라는 도시에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박물관은 그다지 유쾌한 곳은 아닙니다.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플랑드르 전방 지역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쟁으로 인한 물리적, 심리적인 상처, 난민들의 소지품, 많은 이들의 무덤과 전쟁에 참여했던 개인의 이름과 흔적을 고스란히 모아놓았습니다. 일기를 포함한 글과 사진, 필름과 전쟁의 소리, 조각, 그림, 유물, 모형 모두가 그 흔적들입니다. 플랑드르필즈 박물관 외관 플랑드르필즈 박물관 내부 모습과 작품들--------------------------------------------------------​​인형 박물관Musee de la Poupee, Paris너무나 좋아해서 신경써서 수집하는 물건이 있나요? 이런 취미가 있는 사람을 '덕후'라고도 부르지요. 수많은 덕후 중 성공한 덕후인 귀도 오댕(Guido Odin)과 가의 아들 사미 오댕(Samy Odin)은 앤티크 인형의 수가 늘어나자 이를 진열할 공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곳이 인형 박물관이지요. 인형 박물관 외관작은 공간이지만 총 4개의 파리의 좁다란 골목 어귀를 따라 그곳에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생일파티장, 병원, 상점 등 다른 곳에서 다양한 모습을 한 500여개의 인형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공간이긴 하지만 총 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19세기, 20세기, 세계대전 전후로 인형의 역할과 시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애정했던 인형이 내 삶의 일부였듯, 인형이 인간 삶의 일부로서 함께 변화하고 생동하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곳이지요. 인형 박물관 내 전시물--------------------------------------------------------​앙소르의 집Ensorhuis, Oostende앙소르의 집은 벨기에의 북서부의 항구 도시이자 휴양지인 오스텐드에 있습니다. 화가, 음악가,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한 제임스 앙소르가 1917년 고모에게 이 집을 상속받은 후 1949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무른 곳이 바로 앙소르의 집입니다. 1층은 앙소르의 숙부가 운영했던 기념품 가게의 모습으로, 2층은 앙소르가 생활하고 작품활동을 한 공간으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앙소르의 집인만큼 앙소르의 작품들을 볼 수 있지만 전부 복제품입니다. 원작들은 전 세계 국립 박물관에 흩어져 있고요. 진품이 아니라고 아쉬워하는 대신 휴양지로도 손색없는 이 도시의 이 공간에서 때로는 기이하게 보이는 그림을 그린 앙소르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앙소르의 생전 모습과 앙소르의 집 내부<간이 탈의장, 1876년 7월 29일 오후>, 1876(위 왼쪽) | <청어 절임을 갖고 싸우는 해골들>, 1981(위 오른쪽) | <내 어머니>, 1915(아래 왼쪽) | <푸른 항아리가 있는 정물>, 1891(아래 오른쪽)​ <죽음과 가면들>(위)| <가면에 둘러싸인 앙소르(자화상)>, 1899(하단 왼쪽) | 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앙소르의 작품 <슬퍼하는 남자>(1891)와 영화 속 장면

  • [세계 속 박물관] 어디까지 가 봤니? 영국편

    유럽여행을 갈 때 꼭 방문하고 싶은 나라로 영국을 빼놓을 수 없죠. 대영 박물관으로도 알려져 있는 영국 박물관, 런던 트파팔가 광장에 위치한 국립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 등 가봐야 할 곳이 많지요. 지난 번 소개해드린 미국뿐 아니라, 영국에도 작지만 알찬 박물관들이 있습니다. 신사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곳에서는 어떤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피트 리버스 박물관Pitt Rivers Museum, Oxford민족지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민족학 연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학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민족이 아니라서 "'미개한' 민족을 연구한다"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미개한'이라는 단어는 마무래도 조금 거슬리죠?^^;; 무튼 민족지학 이야기를 꺼낸 것은 피트리버스 박물관이 바로 민족지학 연구에 유용한 수집품들을 모아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피트 리버스 박물관 입구와 내부 전경이 박물관은 1884년 피트 리버스라는 장교가 자신이 수집해 온 것들을 옥스포드 대학에 기증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2만여 점 이상의 물건을 기증했고, 지금은 인류학자와 탐험가들의 것이 더해져 50만 개의 물건이 있다고 합니다. 사진, 영화, 원고 등 기록물뿐만 아니라 악기, 무기, 가면, 보석 및 도구 등 과거 어느 민족이 사용했을 기이한 물건들도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워낙 물건이 많아 정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유형별, 형태분류학별 등에 따라 큐레이터 되어 있다고 하니 물건 자체뿐만 아니라 물건들 간의 관계도 상상해 보면 재밌을 것 같네요.피트 리버스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코리니움 박물관Corinium Museum, Cirencester영국 잉글랜드 시런세스터 코츠월드에 있는 코리니움 박물관은 193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박물관 자체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소장품들 또한 선사시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시런세스터에서 두 번째로 큰 로마시대 마을이었던 코리니움에서 출토된 작품들이 많습니다. 로마인들이 영국에 온 후, 상품 교환을 위한 시장, 세금과 물품을 모으고, 그 과정에서 로마 문화를 전하기 위해 도시 계획을 세웠다는군요. 그중 하나가 바로 코리니움인 것이지요.코리니움 박물관 외관코리니움 박물관의 운명도 시런세스터의 길 아래에서 코리니움의 흔적으로 보이는 모자이크가 발굴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이곳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모자이크 바닥과 조각, 묘비석 등이 꼽힙니다. 각종 유물들을 손으로 만져보는 등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도 있고, 어린이들 대상으로 미니 모자이크를 만드는 워크샵도 있으니 시기만 잘 맞추어 가면 색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코리니움 박물관의 주요 작품 발굴 장면과 주요 전시물 ----------------------------------------------------------도브 코티지Dove Cottage, Grasmere수선화골짜기와 언덕 위로 높이 나는구름처럼 외로이 헤매이다문득 한 무리를 보았네.호숫가 나무 아래 미풍에 하늘하늘 춤추는 금빛 수선화의 무리를은하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이어져물가따라 끊임없이줄지어 뻗쳐 있는 수선화즐겁게 춤추며 고개를 까딱이는수많은 꽃들을 잠시 바라보네.그 곁에서 호수물도 춤을 추었지만반짝이는 물결은 수선화의 기쁨을 따르지 못했네.이렇게 즐거운 무리들과 함께시인이 어찌 즐겁지 않으리.나는 지켜보고 또 보았지만 그 정경 내게얼마나 보배로운지 미처 몰랐네.이따금 한가로이 혹은 생각에 잠겨자리에 누워 있을 때면고독의 축복인 마음의 눈에수선화들이 반짝이네.그럴 때면 내 가슴 기쁨에 넘쳐수선화와 함께 춤을 추네.​​이 시는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 1850)의 작품입니다. 이 외에도 <무지개>, <영혼불멸> 등의 작품이 유명하지요. 영국의 많은 낭만주의 시인이 일찍 세상을 떠난 반면, 워즈워스는 70대까지 세상에 남아 그 아름다움을 열심히 표현했습니다. '책은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이다'라는 이 유명한 말도 워즈워스가 남긴 말이라고 하네요. 도브 코티지는 워즈워스가 1799년부터 1808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누이인 도로시 워즈워스와 함께 살며, 메리 허친슨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완두콩과 강낭콩을 기르며,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수선화>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 중에서도 훌륭한 시들은 대부분 도브 코티지에서 탄생했습니다.도브 코티지는 윌리엄 워즈워스가 살았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워즈워스의 손때가 묻은 소지품, 그가 디뎠던 바닥, 그의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난로와 그가 산책하며 영감을 얻었던 정원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영감을 얻을 지 궁금해집니다.  도브 코티지 외관도브 코티지 내 모습과 전시물----------------------------------------------------------존 리트블랫 경 보물 갤러리The Sir John Ritblat Treasures Gallery, London존 리트블랫 경 보물 갤러리는 영국 국립 도서관 내에 있습니다. 영국 도서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지요. 영국 도서관은 원래 영국 박물관 내에 있었는데, 소중히 보관해야 할 보물들이 점점 늘어나 1998년에 런던의 중심지인 현재의 위치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거물인 존 리트블랫이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만들길 원했고, 지금의 보물 갤러리가 탄생했다고 하네요. 도서관 내 보물들은 대부분 도서관과 아주 잘 어울리는 오래된 원고, 기록물들입니다.영국 국립 도서관 전경과 존 리트블랫 경 보물 갤러리 입구​존 리트블랫 경 보물 갤러리가 있는 영국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대신 회원증을 만들어야 하고, 연필 외에 모든 필기구, 음식물들은 반입할 수 없습니다. 개인 가방도, 코트나 재킷도 동전 1파운드를 내면 사용할 수 있는 사물함에 넣어야 합니다. 연필이나 지갑, 노트북 컴퓨터 등의 소지품은 비치되어 있는 투명 가방에 넣고, 직원에게 확인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습니다. 도서관 이용이 이렇게 엄격한 이유는 영국 도서관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보존되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돈으로 메길 수가 없어서 보험사에서 받아주질 않는다고 하는군요. '앨리스' 시리즈를 비롯한 영국 도서관 내 고문서존 리트블랫 경 갤러리는 '도서관의 보물'이라고 불립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습작 노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본, 제인 오스틴의 습작 노트, 존 레논의 습작 노트와 폴 매카트니의 친필 <Yesterday> 가사 등 비틀즈 컬렉션 등이 있다고 합니다. 14세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화엄경도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켈빈그로브Kelvingrove, Glasgow영국 스코틀랜드에 간다면 켈빈그로브를 꼭 들르길 바랍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고, 1901년 개장 당시 글래스고 시장이 '꿈의 궁전'이라고 명할 만큼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8천여 점의 작품이 22개의 테마로 나뉘어져 전시되고 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예술, 스코틀랜드 예술,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공룡과 선사 시대의 포유동물에 대한 자연사, 고대 이집트, 아프리카,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세계 문화사에서 중요한 전시물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켈빈그로브 외관캘빈그로브 내 작품들마티스, <분홍색 테이블보> | 달리,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 카델, <실내, 오렌지색 블라인드> | 카델, <빨간 의자> 존 래버리의 <안나 파블로파>와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한 귀여운 관람객(상단) | 세인트킬다 군도의 주민들이 사용했던 세인트킬다 우편선

  • [세계 속 박물관] 어디까지 가 봤니? 미국편

    미국에는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박물관이 많지요?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로 유명한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 박물관’, 미국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 뉴욕 현대미술관 'MoMA' 등등. 하지만 이것이 미국 예술의 전부는 아니죠! 큰 박물관들 사이에서 작은 것의 가치를 놓치지 않고 모아둔 작은 박물관들이 미국의 예술 세계를 촘촘히 메꾸어 주고 있습니다. 세계 속 작은 박물관 중 첫 번째 이야기, 미국 속 작은 박물관을 소개합니다.--------------------------------------------------------------- 로어 이스트 사이드 주택 박물관Lower East Side Tenement Museum, New York주택 박물관을 소개하기 전, 주택 박물관이 있는 맨하탄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 지역의 의미를 짚고자 합니다. 이곳은 미국의 이민자 지역을 상징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 온 노동자 계급의 약 7천여명의 이민자들이 로어 이스트 사이드 지역이 지어진 아파트에 입주했습니다. 그들 개인의 역사는 곧 미국 이민의 역사. 이민의 역사를 이해하고, 현재 관람객과 과거 이민자 사이의 감정적 교류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로어 이시트 사이드 지역, 그중에서도 주택 박물관 꼽을 수 있습니다.로어 이스트 사이드 주택 박물관 외관주택 박물관은 로어 이스트 사이트 오처드 스트리트 97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독일계 유대인 검퍼츠 부인과 그의 아이들이 생활했던 곳입니다. 생계를 위해 재봉틀을 마련하고, 주택의 일부를 상점으로 꾸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 주택은 공동주택 개념이라서 검퍼츠 부인 외에도 세 가족 이상이 살았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겠지요. 그들의 삶뿐만 아니라 로어 이스트 사이드 내 다른 주택, 아파트들도 지속적으로 복원되고 있습니다. 여러 번 갈 기회가 있다면, 매번 진화한 일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주택 박물관 내부 ​---------------------------------------------------------------  프릭 컬렉션 미술관​The Frick Collection, New York피츠버그의 한 기업가인 헨리 클레이 프릭이 평생에 걸쳐 모은 예술작품이 모여 있는 곳이 프릭 컬렉션 미술관입니다. 벨리니, 렘브란트, 고야 등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한번쯤은 봤을 법한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여유로움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프릭 컬렉션 미술관에서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이 건물 자체가 작품들을 위해 건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진행을 묘사하는 패널화를 진열할 수 있게 벽면을 평면으로 개조하는 등 작품의 배열과 조화를 고려하여 설계하고 건축한 것이지요. 이 건물은 뉴욕공립도서관을 건축한 토마스 헤이스팅스에 의해 설계, 건축되었습니다.프릭 컬렉션 미술관 프릭 컬렉션 미술관 내 작품들벨리니, <사망의 성 프란체스코>(위의 왼쪽) | 베르메르, <여주인과 하녀>(위의 오른쪽) | 베르메르, <장교와 웃는 소녀>(아래 왼쪽) | 컨스터블, <주교의 땅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 --------------------------------------------------------------- 하버드 자연사 박물관The Harvard Museum of Natural History, Cambridge하버드 자연사 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연에 대한 박물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인간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존재라고나 할까요. 유리로 복원한 작은 꽃부터 바다 생물, 척추 동물의 진화 과정, 지구와 우주에 관한 것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연 환경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공간이지요. 불가사의까지한 전시물들을 보고 있으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가 못보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정도랍니다. 하버드 자연사 박물관 외관하버드 자연사 박물관 내 전시물들---------------------------------------------------------------파인아트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파인아트 미술관(혹은 보스턴 미술관으로도 불리는)은 1876년 대중에게 처음 선보인 이래, 1909년 현재의 자리로 이사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작품부터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그림과 사진, 악기 등 5천6백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종합 박물관인 셈이지요. 미국에서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작품들이 있어 이질적이면서도, 드가와 사전트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그림도 함께 볼 수 있는 친숙한 공간입니다. 파인아트 미술관파인아트 미술관 내 주요 작품들사전트,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 | 드가, <팔짱 낀 발레 무용수> | 설리, <찢어진 모자> | 휘슬러, <파랑과 은빛의 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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