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HOME NEWS
예술가 탐구
image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지독한 사랑

우수에 젖은 표정과 긴 목의 초상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이하 모디)와 


그의 영원한 사랑이자 예술의 영감이 되었던 뮤즈, 잔느 에뷔테른

(Jeanne Hebuterne, 1898-1920이하 잔느). 


잔느는 모디의 아내로 그동안 미술사에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모디에게 


모델로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함께 작업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표출했던 


화가 지망생이었습니다.


*모디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저주받은 화가' 라는 뜻이기도 해요


이탈리아 리브른느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선천적인 늑막염, 장티푸스, 폐렴 등으로 어려서부터 


허약했습니다. 1913년경부터는 건강의 이유로 그가 좋아했던 조각을 하지 못하고 


주위 아는 사람이나 창녀들을 모델로 주로 초상화와 누드를 그렸는데요, 


특히 아프리카의 원시조각상에 영향을 받은 그는 긴 목의 애수와 관능적인 여인상의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15살의 나이에 이미 화가의 꿈을 지녔던 어린 잔느는 


미술학교에 다니며 몽파르나스의 가난한 예술가들과 교우하고 때론 그들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잔느는 수업이 끝나면 카페 로통드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어느 날 깔끔한 코듀로이와 


붉은 스카프를 두른 이탈리아 화가 모딜리아니를 우연히 마주하게 됩니다. 


모딜리아니는 잘 생긴 외모에 교양과 매너가 있어서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으나, 너무 가난해서 빵을 사기 위해 헐값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술과 마약, 방탕한 생활에 의지해 현실에서 도피하는 예술가였습니다.


1917년 봄, 조각가 Chana Orloff는 화가들의 모임에서 모딜리아니에게 잔느를 


소개해줍니다. 



be434b5cabff54ff6930df66339b5be5_1541144812_3581.jpg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 1919년, 캔버스에 유채, 66x47cm



be434b5cabff54ff6930df66339b5be5_1541144818_8574.jpg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1917년, 캔버스 유채, 55×38cm



1916년 몽파르나스에서의 가난했던 시절, 그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즈보로프스키는 


그랑쇼미엘 8가에 있는 빌딩 꼭대기에 모디와 잔느의 작업실을 내어줍니다. 


1917년부터 2년 동안 잔느는 수업이 끝나면 작업실에서 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키워갑니다. 어릴 때 부터 폐결핵을 앓던 모디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즈보로프스키의 권유로 둘은 니스의 해변으로 요양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둘은 부부로서 살았지만, 잔느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합법적인 예식을 치르지 못합니다. 14살 연상에 알콜중독에 마약복용, 결핵으로 몸까지 


성하지 않은 가난한 무명화가에게 딸을 보내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겠죠. 


하지만 잔느와 함께하는 동안 모딜리아니는 술도 줄였고, 마약도 끊게 되었습니다. 


둘은 가난하지만 기쁨이 충만한 날들을 보내며 모딜리아니는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시기에 모딜리아니의 대표적인 초상화들이 가장 


많이 탄생했고,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딸 잔느 모딜리아니가 태어난 것도 니스에서였으며, 


목이 긴 여인으로 유명한 잔느의 초상화들을 제작한 곳도 니스였다고 합니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게요…"


그러나 그들은 2년이 채 못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 했고, 병원에 실려간 모딜리아니는 


입원 3일 후 사망합니다. 사인은 결핵성 뇌막염이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잔은 모딜리아니의 주검에 달라붙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그리고 근 이틀이 지난 1920년 1월 26일 새벽, 


잔느는 가족과 함께 머물던 아파트 5층에서 창문에 몸을 던집니다. 


22살의 그녀는 8개월 된 둘째 아이를 가진 상태였습니다.



be434b5cabff54ff6930df66339b5be5_1541144822_7446.jpg


모딜리아니의 연인이기 전에 화가로서 잔느의 재능을 보여주는 자화상입니다. 


그녀가 살아남아 계속 작품을 그렸다면 아마 뛰어난 화가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잔느는 자신의 재능도 삶도 모두 포기한 채 사랑하는 연인인 모딜리아니와 


영원히 함께하기 위한 길을 택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앙드레 살몽은 잔느의 죽음에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편히 잠들라, 애처로운 잔느 에뷔테른이여.

편히 잠들라, 당신의 죽은 아이를 요람에 넣어 흔들었을 애처로운 여인이여.

편이 잠들라, 더 이상 헌신적일 수 없었던 여인이여.

생 메다르 교구의 마리아 상과 닮았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죽은 아내여.

편히 잠들라,  흙에 덮여가는 그 새하얀 은둔처에서.


가난 속에서 죽었고, 죽은 후에 유명해진 모딜리아니와 영원한 사랑의 신화로 남은 


잔느의 이야기는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예경뉴스 관련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