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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와 현대사를 품은 'KOREAN ART BOOK' with 한병화 대표

우리의 것이지만 낯선 문화재 사진과 남의 것이지만 익숙한 영어 활자의 조합. ‘한국 미술의 진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KOREAN ART BOOK 시리즈’라고 한 마디로 말해버리기엔 책의 첫인상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낯선 대상과 익숙한 대상 대 낯설어야 할 대상과 익숙해야 할 대상 사이의 간극, 한국 미술의 진가를 한국에도 알려야 하는 현실, 그 와중에도 꿋꿋한 이 12권의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행히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든 사람, 바로 도서출판 예경의 한병화 대표이다. KOREAN ART BOOK 시리즈에 대해 물었는데, 한국의 현대사와 도서출판 예경의 역사를 들었다. 딴 이야기를 나눴다는 뜻이 아니다. KOREAN ART BOOK 시리즈에는 도서출판 예경, 한국의 출판계와 현대사가 담겨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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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ART BOOK 시리즈를 말하기 위해선 총 14권으로 구성된 《국보》전집을 이야기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KOREAN ART BOOK 시리즈는 《국보》의 문고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보》가 심상치 않다. 우선 4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 출판사를 정식 등록한 해에 국보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출판사의 목적이 《국보》를 위한 느낌마저 든다.

처음부터 ‘우리의 아름다움’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이야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한 책도 많고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뭐 아무 것도 없었어요. 문화재 보존은커녕 문화재에 관해 정리해 놓은 자료도 없었으니까……. 우리의 것을 책으로 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이 뜻을 알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일을 추진할 수 있었죠. 기본적으로 우리 문화의 장점을 중국문화의 아류로 여긴다든가, 혼란의 근대사를 지나면서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그에 앞서 체계적인 정리부터 필요했던 거고요.

최순우·정양모·한병삼 전 국립박물관장, 안휘준 서울대 교수 등 총 43명의 국보편찬위원회가 힘을 모아 주었다. 틈틈이 기획회의를 하고, 때로는 한 잔 기울이면서《국보》를 구성하고 생각했다. 《동양서화기법대관》(전 12권), 《단원 김홍도 금강도첩》 등 우리 미술을 알리기 위한 책들도 틈틈이 냈다. 국보편찬위원회가 구성된 지 3년 여의 시간이 흐른 1983년, 기획된 14권 중 1차분으로 4권이 출간되었다.


책이 나온 것은 좋았지만,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어요. 출판사 운영이 힘들었거든요. 큰 위기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근데 사람이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때마침 일본의 다케쇼보(竹書房) 출판사 의 다카하시 전무로부터《국보》를 일본에 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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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케쇼보 출판사와의《국보》일본어판 계약은 한국 최초로 저작권을 수출한 사례였다. 우리 미술의 우수성, 이를 잘 담아낸 책의 가치가 드러나자 그 후의 작업들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1985년 도쿄의 데이코쿠 호텔에서 다케쇼보 출판사의 주최로 일본어판 《국보》 출간 기념회가 열리고, ‘일본 문화의 원류’라는 주제로 강연회도 열었다. 1990년 마침내 《국보》14권이 완간되었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은 증보판으로 정리해 출간했다. 그러한 가운데《국보》를 한 권으로 축약한 영문판 도서 《KOREAN ART TREASURE》도 출간했다.


미국 에이브람(HARRY.Y.ABRAMS.INC) 출판사에서도《국보》를 출간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마 당시 우리나라가 88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는데, 그동안 이름도 몰랐던 우리나라에 대해 소개할 책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 뉴욕문화원 원장이랑 직접 미국에 있는 출판사를 찾아갔어요. 그쪽에서는 한 권만 내고 싶다, 우리는 14권을 다 출간해야 계약한다, 의견 차이가 있었죠.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그쪽 출판사 사장이 바뀌기도 하면서 우리 《국보》건도 흐지부지 되나 싶었고요. 그때 뉴욕문화원 원장이 아예 우리가 만들자고 하더군요. 우리가 직접 영문판으로 한 권으로 만들어서, 한인사회에도 공급하고 우리 문화도 알리고. 그렇게 나온 책이《KOREAN ART TREASURE》이예요. 나중에는 에이브람 출판사가 북미 판매권 독점, 그들 출판사 이름으로 낸다는 조건 하에 미국에서도 출간했어요.

종이에 연대기를 써 가며 기억을 더듬는 모습은 요즘 시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 흐름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때 그만큼 중요한 일을 했고, 격변의 시기를 이겨낸 사람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KOREAN ART BOOK 시리즈가 만약 사람이라면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격변의 시기에도 노력하고, 뜻을 지키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실제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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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ART BOOK 시리즈는 큰 흐름에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전집물의 시대가 가고 단행본 중심으로 변하면서, 우리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등의 단행본을 냈어요.《국보》나《KOREAN ART TREASURE》도 옛날 책이 되어버렸고요.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국보》를 집필한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국보》를 보며 공부한 학자들이 오히려 더 아쉬워했어요. 그러더니 결국 외국인들을 상대로, 유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볼 수 있게 책을 내자고 하더라고요. ‘간편하되 우리 문화의 큰 줄기를 이어가자’라고 뜻을 모았죠.

앞서 KOREAN ART BOOK 시리즈를 간단히 ‘《국보》의 문고판’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아니다. KOREAN ART BOOK 시리즈를 만들 때 ‘우리의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국보》에는 없고, KOREAN ART BOOK 시리즈에는 있는 것이 있다. 바로《민화 I, II》이다. 민화는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실용화로, 한 때는 정통 회화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천시받기도 했다.


민화는 그려진 시대도 그린 사람도 명확히 알 수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가장 토속적인 것이지요. 주제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도 있고,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요. ‘우리’를 이해하는 데 민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민화 책을 만들었지요. 아마 KOREAN ART BOOK 시리즈 중에서 민화가 제일 잘 판매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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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인터뷰 시간 동안 계속 머릿속을 맴돈 것은 ‘의기투합’이라는 단어였다. 《국보》를 위해서, 《KOREAN ART TREASURE》를 위해서, KOREAN ART BOOK 시리즈를 위해서, 우리의 미술을 알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책들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더 멀리가보면 우리 것을 이어와 준 이 역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역사가 지속되는 한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멀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도 의기투합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길에 함께 할 사람이 당신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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